한 달 전 탈레반 피해 아프간에서 탈출해 광주로
“그것이 위험할지라도 인권을 위해 일할 것”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고, 그들의 폭정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탈레반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협조한 사람들을 찾아 보복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많은 이가 자신의 터전을 뒤로한 채 떠나갔다. 그중에는 현재 우리 대학에서 유학 중인 자위드 글리스타니 씨(Jawid Gulistani, 경제학과 박사과정)도 있었다. 지난달 14일 아프간에서 인권운동을 하다 탈레반의 폭정을 피해 한 달 전 한국에 들어온 그를 만나 아프간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전남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자위드 글리스타니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전남대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Balk 대학교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 조교수로 일했고, 같은 기간 동안 아프간에서 인권운동가로 특히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아프간에서 여성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성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전남대에서 MBA를 하고 있던 2017년이었다. 당시 광주디자인센터로 견학을 나간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디자인센터에 고용된 사람 중 약 95%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여성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아프간에서는 거의 모든 일을 남성이 한다. 그렇기에 여성은 경제적 능력이 없고, 이는 여성의 자유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을 보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간 같은 개발도상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 인권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여성 인권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나?
“여러 활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중점적으로 한 것은 여성에게 자율권을 주기 위한 활동이었다. 특히, 여성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여성이 일을 하면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레 여성의 자유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인권 기구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여성들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TV를 비롯한 미디어에 나가 여성들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현재 아프간의 인권상황은 어떤가?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아프간의 인권상황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아프간 여성들은 직업, 교육, 이동의 자유를 잃었다. 심지어 여성들은 남성의 동행 없이 간단한 물건을 사러 슈퍼마켓에 갈 수조차 없다. 탈레반은 특히 여행의 자유를 막고 있어 여성은 홀로 다른 국가에 가지 못한다.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여성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를 정해줄 정도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로 인권상황이 최악이라고 했다. 탈레반과 인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
“아프간의 여성 인권은 집권 세력에 따라 개선과 악화를 반복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있던 2001년부터 2021년까지는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활동이나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혼자서 여행할 수 있는 이동의 권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이 재집권한 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실제로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6개월 동안은 오직 남성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여성들은 사회적 명망이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없게 됐다. 여성에게는 단순 노동이나 보조와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준의 일만 허락됐다. 오직 두 분야에서만 자유로운 노동이 허락됐는데, 그것은 공중 보건과 여성을 가르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탈레반은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이는 아프간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인권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궁금하다.
“사실 인권을 위해 일하는 모든 순간이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순간을 꼽자면 2021년 2분기다. 그때 미국과 나토가 아프간을 떠났다. 우리는 탈레반과 테러리스트들을 직면했고, 어느 때보다 무서운 상황에 놓였다. 아프간의 모든 곳에서 총, 폭탄 등을 이용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런 상황은 인권운동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시 나를 포함한 모든 인권운동가가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반대로, 인권운동을 하면서 보람찼던 순간도 있을 것 같다.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순간 직전인 2021년 1분기다. 그 당시 여성 권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 나와 동료들은 ‘여성 인권 위원회(woman rights committee)’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는 정부 부처에 여성 인권과 관련한 자문을 하는 조직이었다. 우리는 거의 두 달 동안 경제, 사회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 그 결과 운이 좋게도 준비한 계획들은 정부에 의해 모두 승인됐다. 그리고 그것은 ‘국제 여성의 날’에 맞춰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앞으로 4년 동안은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할 계획이다. 그 이후 만약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인권을 위해 활동할 것이다. 우리는 더 강도 높은 인권운동이 필요하다. 어느 곳에 있든지 인권과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한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계는 힘든 상황 속에 놓여있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아프가니스탄 사태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고픈 말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한국,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필리핀, 미국 등 어느 곳에 있든 사람은 평등하다.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나아가자. 서로와 함께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

통역도움 조범서 <Chonnam Tribune>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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