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단체, 성적지향 등의 이유로 평등법 반대
“정치권과 학술계, 사회적 인식 수준 따라가려는 노력 시급”

▲ 삽화 이형섭 일러스트레이터(순천대)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이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법이다.'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1장 제1조(목적)

모든 사람은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이용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용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평등권을 갖는다.
                                                                                  같은 법률 제2조(총칙)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역사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2002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차별금지법이 2007년 처음으로 입법 예고되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 등의 반발로 법안의 차별 금지사유가 조정되었다. ‘차별금지사유’는 차별이 성립하는 이유 또는 근거를 말하는데 2007년 법무부는 이중 ▲성적 지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학력 총 7개 항목을 삭제했다.

법무부는 “공청회 후 일부의 반발을 계기로 검토한 것은 맞지만, 애초에 모두 열거해야 할 차별 사유로 보지 않았기에 기준을 세워 재검토했다”고 삭제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차별금지법이 아닌 차별 조장법”이라며 법안을 비판했고, 결국 17대 국회 회기만료로 2008년 5월 차별금지법안은 폐기되었다.

다시 한번 차별금지법 입법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때는 2020년이었다. 정의당은 “단 한 사람이라도 차별받는다면 모두가 차별받을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 입법을 주장했다. 이 시기부터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등 4개의 평등법 법안이 발의됐다. 또한, 지난해 5월 국민동의청원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고, 6월까지 10만 명의 국민이 동의하면서 해당 사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통해 차별금지법 청원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가 마치는 2024년 5월 29일로 연장했다.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진영 간 논쟁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사유 중 ▲성별 ▲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문제 삼는다.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은 지난해 6월 평등법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인간이 선택하는 성별인 젠더(gender)를 수용하여 성별질서를 어지럽힌다”며 “인간의 선택에서 기인한 성별변경행위, 동성 성행위 등을 포함하는 ‘분류하기 어려운 성’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항목이 차별금지사유에 들어있다”고 해당 법안이 부당하다 주장했다. 또한, 진평연은 “가치관을 법으로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독재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대학 교수는 “선천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는다면 위 항목들도 차별금지사유가 되어야 한다”며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경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의도이기에 앞선 주장이 입법 반대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13년 4월 22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재계와 보수기독교계는 평등과 인권의 문제를 기만적인 종교적 논리로, 경제적인 이유로, 정치적 협상으로 타협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입법 반대 단체들을 비판했다.

차별금지법 필요성 대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도 통합법이나 개별법의 형태로 차별금지사유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엔 인권기구에서도 한국의 차별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이 인권 의무를 이행하며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지체되어 온 보호 기제를 지지해주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서한을 2021년 12월 20일 국회로 보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국내 학술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2020년 차별금지법 논의가 다시 한번 대두되면서 학술행사와 관련 단체의 활동이 이어져 기존에 언급되지 않던 쟁점들이 다루어지는 것은 좋은 기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는 “과거부터 인권 문제하면 국가 권력에 자유가 침해받는 문제를 주로 생각했기에 ‘차별’은 그동안 논의되지 않은 새로운 이슈”라며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아 정치권이나 학술계가 사회적 인식을 따라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