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 여파로 3년째 교정에서 교내 학위수여식을 열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졸업식으로 4000여명의 졸업생들이 기념과 축하의 만남을 조금 더 실감 나게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직접 만나는 것만 같을까. 봄볕이 느껴질 만큼 따뜻해진 날씨에 메타버스 바깥의 실제 교정에도 모처럼 졸업생들과 축하객들로 가득 찼다.

사실 교정의 졸업식 분위기는 며칠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리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삼삼오오 학사모를 쓰고 교정을 거닐던 예비졸업생들이 졸업식 분위기를 일찌감치 연출했을 뿐 아니라, 수년 전부터 전국 대학가의 졸업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졸업 축하 현수막들이 우리 대학 교정에도 여기저기에 설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공적 게시 공간을 풍부한 상상력의 친밀성의 공간으로 바꾸는 졸업 축하 현수막은 21세기 개인 미디어 시대의 독특한 소통 매체로 간주할 만하다.

현수막에는 졸업생들의 사진이나 캐리커처가 저마다의 특색 있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담겨 있어서 살펴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물론 범람하는 소셜 미디어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듯이 이러한 문화 역시 경쟁적 자기과시의 경향으로 흐를 수 있어 경계할 필요도 있다.

교정의 졸업 축하 현수막 속에 취업 성공이나 시험 합격에 대한 축하의 사연만 있었다면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우려의 마음도 생겼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나 후배, 경우에 따라 졸업생 본인의 것이 담긴 현수막 속 사연은 다양했고, 종종 험난한 사회 진출의 문턱에서 고민하는 이들의 심정이 여과 없이 담겼다. “화석이 되기 싫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라거나 “어제는 학점의 노예, 내일은 월급의 노예”와 같은 문구들이 그랬다.

교정과 잇닿은 북구청 사거리에는 코앞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위한 대선후보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걸려 있다. 이 현수막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한국의 대통령 직선제는 1980년 광주의 희생에서 촉발된 피와 눈물의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서 198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정치적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올해의 선거는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표현에 대해 지지 후보를 불문하고 유권자들이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사실상의 파행적 대선이다. 차선도 아니고 차악을 가리는 것이 현실 정치의 논리라고는 하지만, 여야 가릴 것 없이 유력 대선 후보들의 모습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공정성의 기준에 크게 밑도는 듯하다. 무엇보다 지지 후보에 따라 편을 갈라 끝없이 ‘혐오의 정치’를 부추기는 현실은 대통령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만든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는 앞으로 5년 동안 민의를 대변하고 이 나라의 얼굴이 될 인물을 선정하는 국가 중대사임에 분명하다. 3월 9일 우리는 북구청 사거리의 현수막 속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현수막보다 더 눈이 가는 것은 우리 대학 교정에 걸린 졸업 축하 현수막이다. 그 가운데에는 “2042년 미남 대통령 후보”라며 졸업생의 이름을 건 출사표 형식의 톡톡 튀는 축하 현수막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 나라의 미래가 북구청 사거리의 현수막 속 인물들보다는 교정에 걸린 현수막 속 인물들, 그리고 새 학기 교정을 거니는 자유롭고 당당한 전남대인들의 꿈과 희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