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가게 운영해 온 홍씨 “주민들에게 누문동은 삶의 터전”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광주광역시에서 진행 중인 도시환경정비사업(재개발) 구역은 33곳이다. 재개발 사업은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난 후 착공 단계에서 이주 및 철거가 이루어진다. 재개발 지역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재개발 착공 단계인 6곳 중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을 찾았다.

광주광역시 누문동 일대는 지난해 12월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난 후 이주 및 철거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과 25일 방문한 누문동은 이주를 앞둔 곳이라고 생각지 못할 만큼 삶의 흔적이 가득했다. 북적이진 않았으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가게나 식당도 문을 열었다. 교회를 청소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자동차들도 계속해서 누문동을 오갔다.

누문동 재개발은 지난 2006년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으로 시작됐다. 누문구역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조합)이 2009년 설립되며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듯했으나, 계속해서 미뤄졌다. 이후 2015년 국토교통부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공모, 선정되며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보상금 문제 등을 두고 조합과 일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차질이 발생했다. 여러 논란 끝에 2018년 11월, 사업시행이 인가됐지만 지금도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그 돈으로 나갈 바에 여기서 죽겠다”
누문동에서 16년 동안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다는 ㄱ 씨는 “처음에는 조합에도 들고 재개발을 찬성했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을 준다고 해 조합에서 나왔다”며 “그 돈으로는 광주 다른 곳은커녕 화순이나 장성 같은 데도 못 가기에 그냥 계속 살아온 여기에서 죽겠다”고 말했다. 현재 적은 보상금을 제시받았다고 주장하는 누문동 주민들은 광주광역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보상금 산정을 위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조합과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일부는 뉴스테이 사업을 누문동에서 시행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뉴스테이 사업은 민간 기업이 아파트를 짓고, 그것을 중산층에게 일정 기간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기업은 해당 아파트를 분양하거나 계속 임대를 유지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그렇기에 뉴스테이 아파트의 공급 원가를 낮추는 것이 수익을 내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누문동의 경우 광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공급 원가를 낮추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누문동 조합에서 일했었다는 이홍용 씨(55)는 “애초에 외곽 지역이나 LH 택지가 아닌 누문동에서 뉴스테이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누문동 재개발 사업을 일반 분양으로 바꾸는 등 적절한 대책이 없으면 여기는 서울 용산 참사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일반 분양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개발은 부동산 경기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동향을 고려하면 누문동 주민들이 뉴스테이 방식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문동 주민들의 연령층이 높은 것도 재개발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누문동이 속해있는 행정동인 중앙동의 평균연령은 지난 1월 기준 50.4세로 같은 기간 광주광역시 전체의 평균나이인 41.9세보다 대략 8.5세가량 높다. 실제로 누문동을 찾은 이틀 동안 그곳에서는 인근 광주제일고 학생들을 제외하면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없었다.

 

 

“80세 이상 노인 이주 자체가 힘든 일”
누문동에서 14년 동안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홍준수 씨(74)는 “내 생각에는 이 동네에서 재개발 반대하는 사람 80~90%가 노인이다. 그분들 모두에게 누문동은 삶의 터전”이라면서 “나만해도 이곳을 떠나는 게 목숨 걸고 가는 것인데, 80세 넘어가시는 분들은 오죽하겠냐. 얼마 안 되는 보상금으로 갈 데도 없을뿐더러 어디 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누문동 재개발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주변 상권도 무너지고 있다. 재개발 과정이 진행되며 일부 건물에는 ‘철거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고, 비어 있는 건물들도 존재했다. 누문동 일대가 소위 ‘슬럼화’의 늪에 빠진 것이다. 이에 아직 누문동을 떠나지 못한 상인들은 무작정 누문동을 떠나지도, 활기차게 장사하지도 못한 채 속을 태우고 있다.

20년 넘게 누문동에서 장사했다는 ㄴ 씨는 “재개발이 미뤄지면서 시장이 죽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이전을 하긴 해야 하는데,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보상 문제도 맞물려 있어 지금 당장 누문동을 떠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누문동의 역사·문화적 가치도 재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누문동은 광주제일고,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비가 소재한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한 중심지다. 누문동에 있는 80여 년 된 주택에 이사를 와 12년간 거주 중인 박국희 씨는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관련한 부분은 시에서 조건부 허락을 해줬다고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80년이 된 주택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가 없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또한 박 씨는 "동계천 유로를 변경해 뉴스테이 사업이 진행된다"며 “동계천 유로 변경이 사업시행 과정에서 통과된 것으로 알지만, 동계천의 물길을 바꾸면서까지 재개발을 진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계천은 무등산 기슭에서 시작해 광주천으로 흘러들어오는 하천이다. 현재는 양동복개도로 근처를 흐르고 있다.

 

 

뉴스테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광주누문희망제작연대(희망연대)’를 조직해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희망연대 감사 김광호 씨는 “누문동 주민들은 시세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감정평가를 받았고, 이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다”며 “아무리 도시환경 정비사업의 목적이 공익적이라 하더라도 누문동에 30~40년 동안 산 소시민들을 고려해야 한다. 누문동 재개발 문제가 잘 해결되어 다른 지역에 좋은 사례로 남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조합은 재개발을 둔 주민 갈등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없어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합은 주민 갈등과 조합 임원의 자격 문제 등을 이유로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해주지 않은 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걸어 승리한 바 있다. <전대신문>은 누문동 재개발과 관련한 조합의 자세한 이야기를 기사에 싣고자 했지만 조합은 “취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도시정비과는 “누문동 재개발의 경우 주민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업이라 관에서 개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누문동 주민들의 갈등을 인지하고 있고, 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서로 간의 이견이 너무 커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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