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박금만 작가는 길거리 전시 작품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지금, 여순사건 관련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금만 작가를 만났다.

Q. ‘여순사건’을 주제로 전시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근현대의 거대한 역사인 여순사건이 이승만 정부 이후 많이 왜곡돼 좌익사상으로 덮여버렸다. ‘여순사건’의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고자 여순사건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Q.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금기시되던 민감한 역사, ‘여순사건’의 유족으로서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여순사건으로 할머니의 남동생과 할아버지가 함께 돌아가셨다. 슬픔을 뒤로 한 채 남겨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아버지는 밤낮없이 일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은 작품밖에 없었다.
예술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해 다른 작품활동은 멈춘 채 여순사건 작품에 전념했다.

Q. 곧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 전시회가 개최된다. ‘불꽃’이라는 단어의 특별한 의미는?
피와 목숨을 건 희생으로 현재의 여수와 순천이 됐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인간답고 평화롭게 어울려 잘 사는 인류 보편적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불꽃’이라 표현했다.

Q. ‘여순사건’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하며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고증을 위해 고려했던 부분은?
먼저 옛 기록, 왜곡된 기록, 현재의 기록을 차례로 자세히 알아보고 역사학자에게 검증했다. 가능한 당시 상황 속 배경과 비슷하게 묘사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시각이나 계절도 고려했다. 머릿속으로 장면을 연상해보고 의상이 없다면 직접 의상을 제작해 촬영함으로써 가장 극적인 사건 장면을 구상했다.

Q.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 주제를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작품은?
<불꽃-Flame> 작품을 통해 갑옷을 입은 분신을 과거로 보내 그분들에게 불꽃이 담긴 금속상자를 전달하는 장면을 담았다.
당시 폭격으로 삶이 망가지고, 가족을 잃어 홀로 남겨진 분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의 여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으로 시간을 초월한 후, 당시로 돌아가 정의가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이번 전시회에 준비하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은?
<함꾸네가세!-여순항쟁행진도>라는 작품은 진남관을 배경으로하는 여수시민들의 행진 장면을 담았다. 사건 당시 대열에 서서 5차례나 진압군의 공격을 막아낸 분들이 있다. 이분들을 찾아뵙고 취재한 기억을 바탕으로 그려 넣었기 때문에 가장 오랜 기간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Q. 대표작 <종포전투>에서 교복 입은 학생이 눈에 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진실조사보고서를 보면 어린 학생이 많이 희생됐다는 기록이 있다. 불의 앞에서 자신의 정의를 굽히지 않고 저항하는 청년들을 그리고 싶었다. 그들의 정신이 곧 여순사건의 정신이라 여겨질 만큼 위대하다고 느꼈다.

Q. 독자가 오랫동안 기억해줬으면 하는 작품은?
<시작-14연대>와 <여수군 인민대회> 작품이다. 여수, 순천 지역에 드리워진 집단적 공포라고 생각돼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담았다. 당시의 민간인 학살은 70여 년의 시간동안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작가들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포를 그린 작가로서 보람을 느낀다. 두 작품을 감상하며 그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Q. ‘여순사건’을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여순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쟁이라 생각한다, 학살이나 반란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어둡고 닫힌 역사다. 여순사건 특별법 이후, 1천 명의 여수시민의 항쟁이 희망적인 역사로 남게 될 것을 느꼈다. 아직은 역사자료와 학술적인 여순 연구가 부족하다.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잊지 않는다면 여순사건은 현재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 함꾸네가세!-여순항쟁행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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