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인간사회에 가져다준 커다란 영향력 중 하나는 기존의 사회적 장들 내부를 현격하게 교란시켜 그동안 익숙해 왔던 방식으로 사회적 삶을 지속시켜나가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대혼란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하고 있었던 사회적 기반의 맨 얼굴과 마주하게 해주었다. 자영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불균형적인 일-가정 양립, 입시 중심의 교육체계, 기후 및 생태위기에 대한 둔감함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곧바로 생계, 양육, 사회화 그리고 생명이라는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위계서열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약자들에게 전가된다. 이러한 구조적 폐해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듯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을 요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방역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대응방식은 단기적 위기탈출 해법에만 몰두할 뿐 보다 장기적인 변혁 시나리오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의료적 위험담론이 여타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을 죄다 빨아들이고 있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 전염 속도가 빠르고 비말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백신접종과 치료제 보급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두기가 최상의 방어체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사적인 친밀한 교감에서부터 공적 삶에서의 여러 모임에 이르기까지 행정명령에 의한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사회적 삶을 재조직하도록 만들었다. 행정명령은 가시적 차원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서로에 대해 최첨단 센서마냥 민감하게 감시하고 있으며, 행정명령을 어길 시 상호 간 불편한 언행과 적대적 제스쳐는 거의 자동발생적으로 표출된다. 언론매체의 자극성 짙은 보도를 통해서도 종종 접했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일은 다반사다. 팬데믹은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문화를 촉발시켰다. 이전까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행해졌던 일들은 하나씩 역학체계와 행정명령에 의해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이제 상황은 전도되어 내 이동경로에 대한 추적과 감시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균열된 사회적 관계의 틈새를 비집고 온라인을 통해 관계를 재구축하는 SNS, 유튜브, 플레이스테이션 등과 같은 플랫폼세계가 대폭 확장되었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 IT 및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에게 코로나-19는 자신들만의 신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 지렛대 같은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국가의 정책과 방침은 이들 기업들이 유도한 바와 친화력이 높은 방향으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사람들도 플랫폼체계가 짜놓은 논리에 맞춰 관계를 직조해나간다. 최근 메타버스(metaverse) 논의는 가상현실에서의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수준까지 왔음을 반증해준다. 이런한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재조직해나가는 방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온라인 기반의 사회적 삶은 고도로 디지털화된 리듬과 알고리즘에 우리를 가둬버린다는 점이다. 사이버세계에서의 자유는 세밀한 통제를 전제로 한다. 통제된 자유만 허용되는 사이버세계에서 진정한 자유는 망각된다. 무엇보다 그 통제된 자유는 오늘날 자본과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최고의 상품이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상품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거리두기와 함께 쓸려나간 소중한 가치들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나아가 팬데믹 이후 도래할 여러 차원의 불평등과 배제를 극복하고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태롭게 하는 기후 및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사회모델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플랫폼세계의 변화무쌍한 변화속도와 기술발전에 찬사를 보내기에 앞서 우리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좁은 골목이나 놀이터 하나를 더 만드는 데 골몰해야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팬데믹 이후 사회의 재창조가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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