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한민국은 약육강식·적자생존·승자독식이라는 냉엄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 만인을 향한 만인의 인정투쟁이라는 무한경쟁에 시달린다. 생존과 경제발전이라는 시대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와 같은 처절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낙오자와 패배자를 만들고 시기와 질투, 혐오와 경멸, 분노와 적개심을 잉태하여, 사회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렇듯 상생과 배려의 미덕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은 ‘악플’을 통해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울분을 토로하는 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악플은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감추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거짓정보를 흘리고, 상대를 비방·모욕하며, 명예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다. 이 또한 상대에 대한 인격살해이며 공개처형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폭력과 야만성이 넘치는 범죄적 글쓰기다.

<글쓰기> 1주차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 중 하나는 ‘글쓰기의 윤리’다. 온라인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글쓰기 윤리 교육은 더욱더 중요하다. 2000년 6월 15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발표한 사이버 윤리강령을 공유하며 네티켓을 이야기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책임감과 경각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사이버 공간에 무심히 올린 악성 게시글(댓글)과 합성사진(이미지), 모바일 메신저 등은 누군가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이와 관련하여 공연히 상대를 비방하는 지나친 언행으로 사이버 명예훼손에 저촉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함께 피해 대상의 범위도 연예인(공인)에서 일반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신이 댓글을 단 사실조차도 잊었거나, 게시글을 내린 경우라도 그 공연성으로 인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가해자들이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못 느끼는 반면 이로 인한 처벌은 상당히 엄중하다.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 중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 다수에게 전파할 가능성,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사실의 언급이 있으면 사이버 명예훼손이 성립된다고 한다. 어떤 스포츠 해설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지속적으로 단 20대가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기사 역시 우리에게 글쓰기의 신중함을 곱씹게 한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표현과 내용이 특정인을 지목하는 내용이 적시됐다면 이 역시 피해자가 특정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대상을 지속적·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폭력도 늘고 있다. 익명성에 기대어 혹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비겁하게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연이은 연예인들의 죽음으로 악플 방지법이 공론화되고, 그 법적 책임도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범죄라는
지각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다음에 인용한 하린 시인의 ⌈악플⌋이란 시는 이러한 사이버 공간의 범죄를 은유하며 악플러(악담)들의 범죄행위를 고발한다.

입을 열두 개나 가진 악담은/오늘 아침에도 따분했다/
자음과 모음을 우적우적 씹어먹고/서로의 생각을 파먹으며
과장되게 몸짓만을 부풀렸다/(중략)/악담이 번식시킨 레퀴엠의 시간/
가시를 잔뜩 품은 다짐이 목구멍을 관통할 때,/
타인과 타인 사이/도피와 회피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어둠의 결심보다 빛의 변심이 흔해졌고/
말들은 스스로 질식하는 꿈을 꾸곤 했다/
어느 순간 음지에서 피는 꽃이 진실을 토했다/
그런데도 악담은 고압선 위 까마귀처럼 무탈했다/(중략)
악담은 껄껄껄 웃었다

상대를 비방(비난)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진정성 있게 곁을 주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부도덕한 행적을 보고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늪에 빠뜨릴 목적으로 ‘악담’을 자행하여 스스로를 늪에 빠뜨리는 악랄하고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플을 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가꿔간다면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오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송희(시인, 국문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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