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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 듯한 두통이 온다. 효정의 머릿속을 맴도는 끔찍한 소리가 찌르는 듯이 아프다. 효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편견’이 가득하다. 69세 노인이 20대의 젊은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선입견. 걱정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무형의 말들은 효정조차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색감은 초반부를 채웠던 푸른 계열의 새벽 공기와, 책방의 붉은 조명이다. 푸른 계열로 채워진 화면은 효정이 흘리지 않는 푸른 눈물을 대신 흘려주는 듯 그의 처연함을 정점으로 치닫게 만든다. 가해자 이중호가 날뛰는 장면에서 채워지는 붉은 조명의 책방 화면은 효정의 끔찍했던 기억을 강조한다. 두 가지 색의 대비가 효정의 감정선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 것이다.

세상은 왜 효정에게 그리도 각박한 건지, 69세 여성이라고 해서 감정까지 늙어버린 것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모두 노인의 삶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도래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늙어간다는 사실과 함께 무언가를 꿈꿀 시간도, 용기조차도 버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효정은 울지 않는다. 시체처럼 물을 떠다닐지라도 굳건히 살아낸다. 모두가 그녀에게 삶이 끝났다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효정이 고통을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다른 내일이 찾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크고 작은 ‘청년과 노인의 갈등’을 반복하며 전개된다. 노인은 분리수거할 대상이라며 효정의 동거인 동인을 무시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효정에게 함부로 화를 내는 간호사, 동
인과 효정의 동거를 비웃는 경찰들, 끝으로 ‘늙어버린 주제’에 자신의 인생을 망친다고 효정을 원망하는 가해자 중호까지. 청년과 노인 간 무수한 갈등을 통해 임선애 감독이 그려내고자 한 것은 ‘사회가 도태시킨 노인의 삶’이다.

이 영화는 노인 여성의 성폭력을 그리면서 시작하지만 결국엔 사회가 바라보는 노년의 삶을 조명한다. 효정은 이내 용기를 내고, 마음에 담긴 고통을 종이 위에 고발한다. ‘그날의 기억’ 이후 올라갔던 옥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숨을 흘려보내는 효정의 뒤로 고발장이 바람에 날려간다. 효정의 용기 있는 고백은 바람을 가르며 도심 곳곳을 헤맬 것이다. 효정의 한숨이 후련하게 들리는 까닭은 그 바람결에 과거를 흘려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69세의 효정을 사람으로 바라보기 이전에, 사회에서 도태되어 가는 노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늙어가는 과정을 비웃을 것이라면 훗날의 나를 비웃
는 것과 같다. 젊음을 무기로 누군가의 흘러버린 세월을 함부로 정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젊음은 한 철이다. 한정된 시간을 우회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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