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독서의 중요성은 많이 인식하지만 기록의 중요성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새롭게 맞이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적인 학문들을 배우며 나도 모르는 새에 과부하에 걸렸다. 억지로 나를 틀에 가뒀고 완벽해지려고 노력했다. 뭐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괴롭혔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성취감보다는 마음속에 공허함이 가득했다.

그때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문장들을 노트와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은 습관이 됐고 주변 사람들이나 사물에게서 받은 영감을 기록하는 것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기록하는 습관은 공허한 내 마음을 채웠고, 시간의 농도는 짙어졌다.

그러자 평범하고 사소했던 일상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소중한 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가다 본 아스팔트에 핀 꽃 한 송이, 부모님과의 안부 전화, 무심코 찾아온 계절의 변화도 정말 평범한 일상이지만 전부 기록의 소재가 됐다. 언젠가 내 블로그에서 일기를 본 친구가 말했다.

‘너는 너만의 세계에서 감정의 바다를 그리는 사람 같아.’

내가 하루하루 소소하게 기록했던 나의 작은 수첩 안에는 나만의 작은 세계가 완성되어 있었다. 작고 미묘한 것들이 모여 온전한 나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작은 세상에서 나는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나만의 성장 기록이 쌓일수록 내가 더 선명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했던 일 뿐만 아니라 나의 슬픈 감정을 어딘가에 적어놓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덜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너무 금방 흐른다. 망설이는 사이에 소중한 시간은 멀찍이 도망가고 결국 놓치거나 사라지고 만다.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때의 감정, 생각을 잃게 된다. 기록을 통해 꺼내어 본 지난 순간들은 글자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세상을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할 것이다. 머릿속에서 흐릿해져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기억들이 남아있는 글을 보면 지금 당장 내게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해진다. 나에게 글과 기록은 그래서 참 좋다.

메모와 기록이 그 사람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든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록의 힘은 대단하고 실로 위대하다. 사소하게 적은 모든 순간들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어 우리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자신에 관한 살아있는 기록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 아닐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서 혹시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기록의 시작은 엉성할수록 가치 있다. 누구나 처음부터 대단한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록들은 매우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고, 그렇게 가벼운 기록들이 모일수록 결과물은 더 빛나기 마련이다.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질보다는 양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기록함으로써 나아간다면 그 끝엔 어느새 성장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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