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떠나 한국에 온 지 어느덧 2년 째, 미얀마 유학생 마웅 씨는 미얀마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광주를 애틋하게 표현한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우리 대학 미얀마 유학생 판이티 마웅 씨(Pannei Htwe Maung, 국어교육과 석사과정)가 걷고 있는 5월의 광주를 함께 들여다보자.

▲ 토요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딴뽕띠 집회로 향한다.

미얀마에 ‘희망’을 전하는, 41년 전의 광주
마웅 씨의 5월은 누구보다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팀’에서 활동하는 마웅 씨는 주말마다 집회에 참여한다.
토요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에서 열리는 딴뽕띠(미얀마에서 진행된 경적과 냄비 두들기는 소리를 내는 시위에서 유래)집회로, 일요일에는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리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지지 집회로 발길을 옮긴다. 곁에 선 많은 이들은 마웅 씨에게 큰 힘이 된다.
마웅 씨가 이야기하는 광주는 ‘희망’의 상징이다. 5·18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마웅 씨는 사진을 보며 미얀마와 광주가 같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민들이 희생당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41년 전 광주와 지금의 미얀마가 너무나 똑같다고 느꼈다.

▲ 일요일,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열리는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보고 싶은 나의 어머니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언론사로부터 취재 요청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마웅 씨는 자신의 한 마디가 미얀마 국민에게 작은 도움으로 닿길 바라며 다큐멘터리, 라디오, 신문 등 많은 인터뷰를 매일 소화해내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웅 씨는 미얀마에 계시는 어머니의 품이 늘 그립다. 그는 집회에 나갈 때마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아주머니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아주머니들은 마웅 씨에게 광주의 어머니와 같다. 친딸처럼 보살펴주신 광주의 어머니들이 있어, 마웅 씨는 고된 타국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 '연대'가 갖는 힘
▲ 라디오에 출연해 미얀마의 실상을 알렸다.

한국과 미얀마를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웅 씨는 ‘미얀마 유학생’이기 이전에, ‘평범한 대학생’이기도 하다. 미얀마지지 운동을 이어가는 중에도 대학원생 신분인 마웅 씨는 학교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
최근 마웅 씨는 MBC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전보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바쁜 학생을 혼내지도 않고 응원해주시는 전공 교수님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미얀마에서 마웅 씨가 공부했던 전공은 ‘전자통신’이었다. 한국어에 관심이 생기면서부터 국어교육으로 전공을 바꾸게 됐다. 1년 반 뒤 석사과정을 마치면 박사 과정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마웅 씨는 원래 공부에 욕심이 많은 학생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마웅 씨의 꿈은 한국과 미얀마를 잇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학업을 마치면 미얀마로 돌아가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 광주와 미얀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광주의 연대에 감사를 표하며
마웅 씨는 당장 미얀마에 가서 직접 집회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구금된 학생들과 사망한 국민들을 떠올리며, 마웅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를 걸고 5월을 보내고 있다.
마웅 씨는 “41년 전 같은 일을 겪었던 광주도 결국 민주화를 이뤄냈다”며 “광주가 보여준 기적처럼, 미얀마 국민들에게 멈추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 세계인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에 큰 힘을 느낀다는 마웅 씨. 그중 가장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광주로부터, 이 도움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거듭 언급한다.
마웅 씨는 “SNS에서 미얀마를 응원하는 글을 볼 때마다 큰 힘이 되고 있다”며 “미얀마가 민주화의 봄을 이뤄낼 그 날까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얀마에는 ‘지지와 애상’을, 마음을 보태주는 많은 이들에게는 ‘감사’를 전하는 마웅 씨의 5월이 오늘도 깊어간다. 

▲ 미얀마 응원 메시지에 힘이 솟는다는 마웅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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