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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의 쌍둥이 건물 이야기전남대 역사를 찾아서 ⑦ 구 박물관과 학군단
전남대역사연구회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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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5  20: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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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군단 전경
   
▲ 구박물관 건물(독일문화원 사용 시 모습)

 

 

 

 

 

 

 

우리 대학에 쌍둥이 건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쌍둥이처럼 꼭 닮은 두 개의 건물은 오랫동안 ‘박물관’(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함, 이하 ‘구 박물관’이라 칭함)과 ‘학군단’(언어교육원과 사범대 1호관 사이의 숲에 위치함)으로 사용되었다. 학군단 건물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위치해 있고 학군단과 구 박물관이 거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어 두 건물이 비슷한 외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게 쉽지 않다.

두 건물은 연면적(298㎡)뿐 아니라 외부마감재가 동일하다. 건물 구조는 석조 1층이며, 건평이 100여 평 규모이다. 평면도나 사진을 보면 두 건물이 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비슷하지만자세히 보면 창문과 일부 벽면, 지붕의 좌우 모습이 약간 다르다.

   
▲ 2018년 6월 철거 중인 독일문화원(구 박물관)

구박물관은 1955년 12월 준공된 후 법과대학 본관으로 사용되다 1959년 1월 금호각(중앙도서관)에 있던 박물관(관장실, 행정실, 전시실, 학예실)이 이전하면서 박물관으로 불리게 된다. 1963년 7월 박물관 내에 호남문화연구소를 설치하였으며, 2002년 8월에 출판부가 입주하여 사용하다가 2011년 11월 이사하였고, 2013년 10월부터 두달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14년 3월 주한 ‘독일문화원 광주어학센터’ 가 입주하였다. 2017년 구 박물관 부지가 디지털도서관 신축부지로 결정되면서 2018년 4월 독일문화원이 창조관으로 이전하였고, 그해 7월에 구박물관이 철거되었다.

초창기의 구 박물관은 건평 90평에 30여평의 진열실을 갖추어 토기 2천7백여 점, 금속류 7백19점 등 신석기 유물과 백제 유물 총 4천여 점을 소장한 호남문화의 주요 박물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6,70년대만 해도 구 박물관은 호남에 박물관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유물 소장품이나 시설 면에서 우수한 편이었으나 1985년 이후 예산지원 감소로 진열실의 공간이 부족하여 유물 교체 전시를 하였다고 한다.
2002년에는 구 박물관내에 출판부가 입주한 후 2009년 11월 시설과에서 건물 뒤편 증축을 위해 현장 점검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증축 사업은 진행되지 못하였고, 2011년 출판부가 생활관 관리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박물관은 2년 동안텅 빈 상태로 존치되었다.

2013년 10월부터 11월까지 광주은행에서 약 3억 원을 지원 받아 구 박물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고, 독일문화원 광주어학센터가 입주하였다. 구 박물관은 독일문화원 입주로 전남대 구성원들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독일어강좌를 운영했고 문화 행사와 출판물, 디지털자료 비치 등 독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였다.

   
▲ 1955년 10월 구 박물관 모습

2017년 4월 학내에서 디지털도서관 신축을 위한 입지 선정이 이슈화되면서 당초 용봉관 주차장부지에 계획했던 디지털도서관의 위치가 구 박물관이 위치한 동산으로 결정되었다. 최종적으로 구 박물관 건물의 철거가 결정된 것이다. 구 박물관에 위치한 독일문화원 광주어학센터는 2018년 4월 평생교육원 1층으로 이전하였다.

디지털도서관 신축공사가 시작되던 2018년 6월부터 7월까지 구 박물관의 철거가 진행되었다. 철거할 때 살펴보니 하부에 있는 돌은 장방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상부로 갈수록 돌의 형태가 불규칙하고 다듬어서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요즘은 돌을 판의 형태로 가공해서 외장재로 사용하는데 1950년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인력이 풍부해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구 박물관의 외장재로 사용되다가 철거된 돌들은 공대 쪽문 옆의 주차장에 보관중이다. 차후 학군단 자리에 신축 예정인 민주역사기념관에 구박물관의 철거된 돌들을 재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학군단 건물은 1955년 6월에 착공하여 1955년 11월 20일에 준공되었다. 처음엔 공과대학 본관 건물로 사용되다가 1957년 12월 3일 공과대학 1호관이 준공되어 이전하였다.

공과대학 신축공사가 1954년부터 시작되어 1960년도까지 강의실, 실습공장, 실험실 등을 연차적으로 완공시켰다. 공과대학이 용봉캠퍼스로 이전한 것은 본관(현 학군단 본부)과 목조 단층인 A, B, C, D강의실이 완공되기 몇 달 전인 1955년 5월이었다.

1954년 6월 전남도민의 협조와 발전후원회 예산으로 본교 용봉캠퍼스의 신축공사가 시작되었고, UNKRA와 건설공병대 제 211부대에서의 시멘트, 미송 용역지원이 있었다. 벽돌 공급을 위해 C강의실 뒤편에 벽돌공장을 세워 여기서 생산한 것으로 벽돌의 수요를 충당하기도 했다.

1955년 7월에 준공한 건물은 섬유화학공학과 교실(A강의실, 1층의 목조 및 벽돌건물, 면적 465.63㎡), 전기공학과 교실(B강의실, 1층의 목조 및 벽돌건물, 면적 478㎡), 토목건축과 교실(C강의실, 1층의 목조 및 벽돌건물, 면적 466㎡). 채광연금과 교실(D강의실, 1층의 목조 및 벽돌건물, 면적 477.51㎡)이고, 11월에 준공한 건물이 바로 지금의 학군단 건물이다.

언제부터 학군단 건물로 사용했는지는 정확한 연대는 파악하지 못했다. 1961년 초에 학군단이 창설되었고, 1975년 6월 25일에 학도호국단 발단식이 거행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학군단 건물은 학군단장실, 행정실, 교육통제실, 훈련관실, 교수부장실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평생교육원과 학군단 내무실, 학군단 자치사무실이 둘러싸고 있어서 학생들조차 인지하기 힘든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학군단 건물은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고 또한 그만큼 노후화된 건물이라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한 실정이다. 향후 학군단 내무실과 학군단 자치사무실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가칭)민주역사기념관이 신축될 예정이다.

   
▲ 1959년 3월 졸업앨범 속 중앙박물관

개교 초창기 대표 단과대학이었던 쌍둥이 건물, 법과대학과 공과대학 본관 건물이었던 구 박물관과 학군단 건물. 대학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이 석조건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대학을 기념하는 시설물로 리모델링되어 학교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남대학교 60년사, 전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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