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라인 개강이다. 사상초유의 재택 원격강의로 시작한 봄 학기는 결국 대부분의 강의에서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지 못한 채 끝났다. 상황이 나아져 가을에는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어쩌면 올해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직접 만나기 어렵거나, 더 나아가 이를 바라지 않는 게 예측불가능 시대의 현실적인 대책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오면 감기도 함께 올 텐데 이 겨울 코로나와 독감이 만들어낼 공중보건의 위기를 떠올리면, 고강도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과하다 싶을 만큼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온라인 교육의 효과에 대한 찬반 논의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면 학생들은 통학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또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교수도 이로운 점이 없지 않다. 반면에 대면수업을 통해 교수-학생뿐만 아니라 학생 상호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해 불만인 학생과 교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정답 없는 현재는 단점으로 인한 불만보다는 장점에서 일부 해답을 찾으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조심조심 더듬어 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효과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난 학기 대면 모임이 없어도 삶을 영위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었던 것 같다. 갑작스런 일상의 온라인 전환으로 인한 불편함은 감염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에 비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무분별한 모임과 행사로 인한 사회적 피로감은 없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즉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오던 우리 삶 전반에 걸친 불필요한 과잉요소는 없었는지 묻게 된다.

그동안 대학에서의 교육도 학생개인의 학습과 시민으로서의 성장이라는 대학 본연의 목적과 거리가 있진 않았을까? 진리탐구라는 대학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채 소모적인 삶을 배태하진 않았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생존을 위해 무리짓는 것이 당연하지만, 때로는 무문별한 무리짓기로 인한 폐단도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대학도 시장에 포획된 채 대학문화라고 마땅히 내세울 것 없는 모습이 어쩌면 무리짓기에 기반한 잉여적인 삶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 갈 수 없다고 얘기하는 이때, 솔직히 코로나 이전으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코로나 이전 삶의 질서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뉴 노멀’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는 지금이 위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코로나 이전의 삶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원망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는 서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하는 ‘뉴 노멀’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특히 우리사회의 미래인 대학생은 초중고생들에 비해 학습을 포함한 개인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낙관적 기대와 인간적 믿음에 더욱 의존하고 싶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곧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공백을 책을 가까이 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본질이 그동안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개발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등한시 했던 자연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책과 자연을 가까이 한다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를 사회적 거리두기의 ‘교육적 효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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