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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대중화, 교과서 밖으로! 대안 중 하나 ‘답사’
서금석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강사)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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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8  19: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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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한때, 이 말을 누가 했느냐를 가지고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신채호 선생이 하셨다느니, 혹은 영국의 처칠이 했다고 하는 등 여러 썰[說]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누가 했는지 모른다. 물론 비슷한 얘기는 어느 누가 했을 수도 있다. 신채호 선생의 저서(『조선상고사』, 『독사신론』, 『조선연구초』 등)에 이런 문구는 없다. 당연히 처칠의 저서에도 이런 글귀는 없다. 다만 영국의 재향군인 장관(Ivor Caplin)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콘테가시노 전투(1944) 관련 자료에서, 처칠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전할 뿐이다. 이 말은 여기저기에서 인용되고 있고, 마치 처칠의 저작권이 되다시피 하였다.

물론 신채호 선생이나 처칠이 이와 같은 비슷한 얘기를 어느 장소에서 했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의 기록에서 찾을 길이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이념의 집약이 이 문구의 필요성을 만들고 찾아냈을 것 같다. 따라서 이 문구는 공동 작품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기준도 간단하다. ‘문자’에 의한 기록에 방점을 찍고 있다.

주목할 것은 누가 이 말을 했느냐가 아니다. 시대의 전환기에 사라진 민족 혹은 생존한 민족의 모습을 더듬어보면, 위 문구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다. 왜? 굳이 ‘나라’가 아니라 ‘민족’ 이라고 했을까? 우리와 함께 다투고, 뭉치고 살았던 동북아시아 거대제국 거란족이나 여진족은 지금 사라졌다. 그들이 그들의 역사를 몰라서 망했을까?

왜? 우리는 역사를 민족의 범주에서만 읽어내려고만 할까? 우리 교육은 ‘민족 공동체’ 주입에 강한 자부심을 갖는 듯하다. “역사를 잊은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면 또 어떨까?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고대 건국신화 거의 모두가 이미 다문화 가정 속에서 태생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컨대, 민족과 같은 거대한 관념에 앞서 역사는 공유되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은 조국의 해방을 위한 단결에 필두였고 꼭 필요했을 것이다. 또 해방 이후 그 많은 위정자들은 역사를 민족과 결부시키면서 그 속내를 감췄다. 전 정권에서 추진되었던 단일 국정교과서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는 한 집단에 의해 소유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접촉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단점이 있다. 역사 전공자나 연구자들은 역사를 대중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사료와 책 등 연구자료와 가깝다. 잘해야 역사 관련 책을 출판해서 대중들에게 다가가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최근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서 역사 대중화의 기치를 걸고, 유명한 강사들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잘 편집되고기술적인 연출에 열광한다. 마치 역사를 다 아는 양, 그래서 역사를 쉽게 알게 되었다고 거품을 문다. 주의를 시켜주기는 하지만 염려스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그중의 하나가 방송의 유명강사의 입과 행동이 역사의 전부일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요즘 교과서를벗어나 역사 대중화를 실현시키고 있는 곳이 단연 방송이다. 그들은 시청율에 집중한다.

대중이 주도하고 대중이 참여하여, 대중이 함께 대중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답사’를 생각해 냈다. 학창시절 춘계·추계로 나뉘어 1년 두 번을 다녔던 답사 경험을 사회생활 속에서 다시 살렸다. 기왕의 많은 답사 모임이 있지만, 특화할 필요가 있었다. 단위사업체별, 세대별 등등 많은 답사 모임을 갖춰 이곳 저곳 가까운 우리 지역에서 전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흔적들을 직접 접촉하면 그것이 함께 참여하는 대중화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옛돌답사’, 단위 직업군에서 출발하여, 그 지인들로 넓히고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고 있다. 답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도 높다. 40년을 첨단에서 살아왔는데, 이곳에 ‘장고분’이 있었는지 모른단다. 경주의 왕릉은 가봤지만, 그곳보다 더 거대한 나주 반남고분이 있었는지 모른단다. 광주에 백범 김구 기념관이 있는지 모른단다. 보성에서 서재필선생이 태어났는지 모른단다. 평생 광주에 살아오면서 아직도 담양 가사문학관을 가보지를 않았다고 한다. 울창한 베롱나무 숲속을 지나 고즈넉한 명옥헌을 보고 놀란다. 광주 사람들이 역사를 대중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 답사!밟고, 듣고, 보고, 사색하고, 느끼고 돌아다녀라. 함께! 

   

 서 금 석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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