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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며, 이름 없는 들꽃들에게
전대신문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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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6  00: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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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전남대 구성원으로서 5·18 40주년을 맞는 의미는 각별하다.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에서 비상계엄령 확대에 항의하는 전남대 대학생들과 계엄군의 충돌로 촉발되었고,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전남대 학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박관현, 윤상원 열사도 포함된다. 이미 교내에는 박관현 열사 기념비와 윤상원 열사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올해에는 민주길이 조성되어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전남대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과 가치를 더 많은 구성원들과 함께 기억·기념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0년의 세월을 거치며 5·18민주화운동은 법적·제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고, 대학 차원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기념하게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되돌아봐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사실 5·18은 몇몇 이름 있는 활동가와 시민들의 희생만으로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5·18당시에는 수많은 민초들이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수위아저씨’, 대학본부 직원과 교수,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대학주변의 상인과 자취방 주인집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5월 17일 밤 ‘수위아저씨’는 대피하려는 학생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학교를 지키다가 이유 없이 계엄군에게 두들겨 맞았다.

대학본부 직원과 교수는 학생들을 변호하고 구명활동을 벌였으며, 함께 운동에 동참했다가 해직되기도 했다. 주변 상인과 주인집 ‘어머니’ 들도 계엄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해 온 학생들을 숨겨주다가 말 못할 ‘봉변’을 당했다.

전남대 교정 곳곳의 건물과 장소에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상흔이 배어있다.

현재 5·18기념관과 전남대학교 역사관이 들어서 있는 용봉관(구본부)은 5월 17일 자정 무렵 진주한 계엄군이 학내 곳곳을 수색하며 끌고 왔던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했던 곳이다.

계엄군은 고시공부를 하던 법대생, 실험실습을 하던 자연대생과 공대생,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하던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해 용봉관에 밀어 넣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멍든 채로 18일 아침까지 기나긴 새벽을 보냈다. 5·18기간 동안에는 거리에서 연행된 시민들이 교도소로 이송되기 전 전남대에수용되기도 했다.

5월 21일 계엄군이 퇴각한 후 학내를 둘러보았던 대학본부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학부건물(지금은 사라지고 없음. 현 대학본부 앞 주차장 부근)의 한 강의실에는 한 가마니는 족히 될 만한 양의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허리띠가 500여 개, 신발 100여 개가 널려 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있었다고 한다.

학교 야산에서는 온몸이 대검에 찔리고, 군데군데 피멍이 든 고등학생(광주상고생으로 추정)이 솔잎에 덮인 채 발견되었고, 다른 장소에서도 전남여고 배지를 찬 여학생이 암매장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여학생은 대검에 허벅지를 두 군데나 찔리고, 눈을 부릅뜬 채 발견되었는데 벌여진 입에는 흙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아마도 그런 이웃들과 장소들을 자신도 모르게 지나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쯤은 학내 곳곳에서 불의에저항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곁에서마음을 보탰던 따뜻했던 동료들과이웃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인간애로 인해 ‘5·18’이라는 고유명사와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학교 앞에서 우연히 최루가스를 뒤집어 쓴 학생들에게 공짜로 라면을 끓여 주곤 하셨던 전대 정문 ‘분식집’ 어머니를 뵌 적이 있다. 나이 든 할머니가 되어 뒤뚱뒤뚱 걷던그녀를 본 순간, 삶이 아득해졌다.

지난 40년 동안, 잊어버렸거나 외면당했던 이름들이 전남대 구성원들 마음속에서 되뇌어지길 바라본다.

 

특별논설위원 김형주
(사회학 박사/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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