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 > 기고
전남대 역사를 찾아서 ③ 전남대 중앙도서관전남대 중앙도서관, 금호각(錦湖閣)을 아시나요?
전남대역사연구회  |  news@cnumedi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5.26  00:23:3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1955.1.1. 금호각(중앙도서관)의 조감도

대학의 수준과 미래를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대학의 도서관에 가보는 것이다. 도서관 장서 보유량이 어느 정도인지, 지식을 갈망하는 학생들의 에너지가 얼마나 가득 차 있는지 그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라는 것이다.

   
▲ 1955.2.6.금호각(중앙도서관) 기공식 지진제

2020년 5월, 전남대 캠퍼스는 연말 완공 예정인 디지털도서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홍도’ 라 불리는 도서관 본관, ‘백도’로 불리는 도서관 별관, 지금 공사 중인 디지털도서관까지 3개의 도서관이 있는걸 보니, 꽤 괜찮은 대학인 것은 분명하다.

개교 초창기인 1955년 말, 용봉동 캠퍼스에는 금호각(중앙도서관, 현재의 사회과학대학 자리에 있었던 건물), 문리대 문학부(현재의 인문대 1호관), 법과대(도서관 본관 옆에 위치했던 벽돌건물: 박물관, 출판부로 사용되다가 디지털도서관 건축으로 철거), 공과대(현재의 학군단) 건물이 있었다.

용봉캠퍼스로의 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으니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건물을 먼저 지었을 것이다. 누구의 결정이었는지 모르지만 교사 신축보다 학문 탐구를 위해 가장 필요한 도서관 마련에 공을 들인 것이다.

   
▲ 1958년 금호각

우리대학 최초의 중앙도서관은 1953년 9월에 의과대학 구관 2층에 자리 잡았다. 장서 4,000여 권으로 개관한 중앙도서관은 추후 용봉동 교지가 확보된 후 1955년 11월에 금호각이 완공되자 용봉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현재의 사회과학대학 위치에 자리 잡은 금호각은 광주여객의 금호(錦湖) 박인천(朴仁天) 사장이 사재를 희사하여 지었으며, 그의 아호를 빌어 금호각(錦湖閣)이라 명명했다. 당시 금호각의 현판은 우리나라 제일의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금호각은 2층 벽돌 건물에 건평은 331에 건평은 331평, 기와지붕이 없는 슬라브식 건물이다. 지붕이 없는 슬라브식 건물을 처음 본 광주 시민들이 금호각 앞에서 앞다투어 기념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1955년 당시에는 전남대 캠퍼스내의 금호각 앞 광장이 핫플레이스였던 것이다.

무등산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높은 언덕 위, 용봉동 캠퍼스의 가장 뷰가 좋은 장소, 그곳에 금호각이 자리 잡은 것이다.

   
▲ 1971년 용주마을과 금호각

 

   
▲ 1960년 금호각, 용주마을, 문학부, 대학본부

금호각의 주요 기능은 중앙도서관이었지만 박물관, 대학본부, 대학원 행정실, 교수연구실이 곁방살이를 했다. 1973년 중앙도서관 건물(현재의 도서관 별관)이 준공되면서 대학원 전용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경영대학원, 교육대학원, 행정대학원 등의 특수대학원도 금호각 건물에 입주하게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금호각은 부실호각은 부실공사와 노후화로 보수공사가 자주 진행되었다. 도서관으로 사용하다보니 장서량이 계속 증가하였고, 결국 도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철근콘크리트 보가 붕괴되어 건물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 사회과학대학 앞 금호각 터를 알리는 표지석

박하욱 총장(재임기간 1965.5. ~1968.5.)은 금호각의 하중을 지탱하는 보가 붕괴되어 쇠파이프로 지탱하는 상황을 문교부(현 교육부)에 보고하며 수리비용을 요청하였다. 문교부에 요청한 도서관 수리비용(3,000만원)은 유기춘 총장(재임기간 1969.5.~1974.9.) 때 배정되었다.

유기춘 총장은 금호각을 수리해도 건물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추후 예산을 확보하여 도서관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972년 4층 규모의 신축도서관(현재의 도서관 별관)이 완공되자 금호각은 대학원 전용 건물로 사용되다가 1981년 4월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 인문사회과학관(현재의 사회과학대학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현재 사회과학대학 건물이 들어 서 있는 당시의 금호각 자리에는 금호각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996년 4월에 금호각 설립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써 준 금호 박인천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것이다.

<참고문헌>
전남대 5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남대학교 60년사, 전대신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9. 23 전남대학교 총장 선거의 특별한 의미
2
“총장임용후보자에게 바란다”
3
숨은 인재 발굴대회 참가자 모집
4
“도전하면서 가치 있는 대학생활을 함께 즐겨요"
5
제 21대 우리 대학 총장은 누구?
6
“위기를 넘어, 위대함으로!”
7
“좋아하는 일로 채워 온 일상, 모든 날이 추억이에요”
8
“상생의 혁신플랫폼, 미래를 선도하는 전남대”
9
“더 강하고 품격있는 전남대,당당하고 자유로운 전남대人”
10
그래도 전대의 시간은 흐른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00-757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제1학생회관 2층 신문방송사 편집실
대표전화 : 광주캠퍼스 062) 530-0527/0523  여수캠퍼스 061) 659-6655 | 팩스 : 062)530-0522 | 발행인 : 정병석 | 주간  : 노시훈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지희
Copyright © 2013 전남대학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