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을 앞둔 때가 떠올랐다. 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학부를 다니는 동안 ‘6하 원칙’처럼 내 진로의 첫머리를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재수와 여러 번의 휴학에 ‘남들보다 늦어’란 스스로의 꼬리표를 달고 행선지도 없이 일단 떠야 하는 비행기 신세 같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겠다’는 나름의 이유일지 핑계일지 혹은 회피일지 모르게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이십대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내 젊음이 끝나간다는 두려움이었다. 응당 요즘의 20대라면 연구실이 아니라 학교 밖, 저 멀리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어야 한다는 환상 내지 강박이 응어리졌다. 그렇게 무작정 학교를 뛰쳐나갔다.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털고 빚을 내 세계여행을 떠났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돌아온 건 ‘빚덩이’와 좌절, 후회였다. 조급함을 털어내지 못했던 내 자신을 자책했다. 오랜 슬럼프가 찾아왔다.

긴 슬럼프 끝에 내 스스로에게 던져진 말은 ‘이런 인생’이었다. 어디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인간은 누구나 망가져.”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나오는 대사다. 어긋나고 망가지더라도 정해진 계획 내에서나 그렇지 결국 전진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이다. 세상이 엇박자의 변주로 조화를 이루듯 우리 삶 또한 그런 변주 속에 꽃피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게 있다.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고 다르다는 것을. 애초에 많이 다른 우리가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비슷한 길을 가는 듯해도 다들 매순간 자신에게 쏟아지는 물음표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 간다. 도망치듯 떠난 스페인 어느 도시를 여행하다 눌러 앉은 누군가처럼, 공무원을 꿈꾸다 의류 제작자 길을 걷고 있는 어느 친구처럼. 나 또한 지금 우연한 기회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던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남들이 가는 속도보다 늦다고 느껴질 수 있다. 혹은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박자 늦어도, 조금 어긋나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면 얼마든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혹은 누군가는 방향만 맞으면 된다고도 말한다. 방향이 틀려도 괜찮다. 모두가 죽음이란 같은 종착지를 두고 있다. 걸어가든, 뛰어가든 혹은 춤추면서 갈 수도 있다.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뿐이다. 그 길 위에서는 그대들이 주인공이다.

졸업호에 실린다는 말을 듣고 ‘라떼’(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같은 글은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했다. 다만 그대들의 대학 생활이 한겨울 한 잔의 라떼처럼 따뜻함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이삼섭(신문방송학과 2017년 졸업 ·무등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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