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으로 지루한 하루. 나름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지만 시작과 동시에 뻔히 예상되는 결과. 내 앞에 놓인 일이 진부하게 느껴지면서 한없이 공허해지는 마음.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치는 것을 넘어서 무기력함이 뒤덮일 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는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잡지사 <LIFE>의 모토)”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메시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명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것은 잠깐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 월터가 마주한 잡지 <LIFE>의 마지막 호 표지는 월터에게 인생의 진짜 맛을 보게 한 듯하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인생이 얼마나 풍부해 질지 사뭇 기대하게 만든다. 그가 느꼈을 전율, 카타르시스는 인생 언저리를 돌고 도는 듯 무기력한 나에게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하 숀)은 네거티브 사진 관리인 ‘월터 미터’(이하 월터)에게 잡지 <LIFE>의 표지 사진이 담긴 필름을 보낸다. 그리고 회사 간부에게 “꼭 25번째,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을 마지막 호 표지 사진으로 하라”고 당부한다. 역시나, 운명의 장난일까. 숀이 보낸 상자 안에는 월터에게 주는 선물인 지갑과 25번째 필름이 비어있는 통 뿐이다. 프로필 란에 -딱히 해본 것, 가본 것도 없어- 적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온 -취미라곤 ‘상상 멍 때리기’ 뿐인- 월터는 숀, 실은 25번째 필름을 찾기 위해 일명 ‘모.배.독(모험, 배짱, 독창성)’스러운 일에 뛰어든다.

월터는 난생처음 그린란드에 가고, 숀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 어선을 타기 위해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숀을 만나기는커녕 상어에게 잡아먹힐 뻔 하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보드로 도로를 질주하고, 화산 폭발에 쫒기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일 등을 한다. 오직 25번째 필름, 삶의 정수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와 같은 경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결국 히말라야 중턱에서 숀을 만난 월터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25번째 필름의 행방에 대해 묻는 월터에게 숀은 말한다. “깔고 앉았잖아. 자네 지갑에 들어 있거든.”

삶의 정수는 내 엉덩이 밑에,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그렇다.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멀리 돌고, 또 돌고, 돌고만 있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이라는 빈칸을 채우기가 힘들다. 무엇이든.- 삶의 정수는 나의 엉덩이 밑에,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내가 무심코 버려버린 쓸모없다 생각한 것들에 담겨있을 텐데. 우리는 왜 자꾸만 시선을 먼 곳에 두는 것일까.

물론 ‘돌고 도는 일’이 삶의 부피를 키우고 볼륨감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월터가 겪은 경험들은 그의 인생의 맛과 결을 다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월터가 모험을 끝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잡지 <LIFE>의 마지막 호 표지, 삶의 정수-월터가 회사 앞에 앉아 사진을 깊이 있게 보고 있는 모습-를 확인하였을 때, 그가 느꼈을 전율은 우리가 느꼈을 잠깐의 깨달음과 감동의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숀이 대표하여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결국 삶의 정수는 삶에 있다’는 진리일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삶이 비록 특별할 것 없어도 내 삶은 특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인데 아쉽게도 나는 주파수가 약한 메시지로 전달 받았다. 왜 그럴까. 조금 삐딱한 시선일지 모르겠으나, 내 보편적인 삶이, 삶 그 자체로 정수이고, 특별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나는 ‘특별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비록 월터처럼은 아닐지라도.

"진정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이제 그 특별한 일이 무엇이냐가 중요해진다. 히말라야 중턱에서 눈 표범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숀. 표범이 나타나길 한참을 기다렸을 터인데, 표범이 나타나자 숀의 눈빛만이 움직일 뿐이다. 월터가 묻는다. “안 찍어요?” 숀은 대답한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비단 눈 표범을 볼 때뿐이랴. “진정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화려한, 유명한 혹은 웅장한 것에 취하기보다 진솔한 삶의 가치를, 결코 대단하지 않은 일이더라도 -어떤 일이든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내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취하는 것. 그리고 그 공간과 시간에 함께 머무는 것. 감동하는 것. 그 감정을 귀하게 보존하는 것이야 말로 삶을 결코 특별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일이 아닐까.

때로는 내가 살아 왔던 삶의 ‘결’과 다른 결을 선택할 줄 아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 온 월터가 두려움과 걱정을 깨고 그린란드 행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월터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지를 위해 묵묵히 일 한 <LIFE>의 직원들처럼 월터의 여행을 응원한 그의 엄마와 애인 멜호프 같은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나의 삶에도 어김없이 그러한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삶의 결의 방향을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해보자. 그 용기는 나의 별 다를 것 없다고 여겨지는 삶을 별 다르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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