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자 중에는 계집 녀(女)가 포함되어 있는 부정적인 뜻을 가진 한자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奴(종 노), 妄(망령될 망), 奸(범할 간), 放(방해할 방), 媸(추할 치) 등이 있는데, 이는 여성억압의 기제들이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부장제(家父長制)와 일부다첩(一夫多妾), 일처다첩(一妻多妾)제는 중국 사회의 여성억압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제도들이다.

1920년대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쟝이모우 감독의 영화 ‘홍등’은 봉건폐습 속에 존재하는 그릇된 가부장제를 향한 철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송련은 그 시절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난 때문에 학업을 계속 하지 못하고 부잣집 4번째 마님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자신을 태우러 온 꽃가마를 뒤로한 채, 두 다리로 걸어가는 송련의 모습에서 벌써 심상치 않은 여성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여성의 자아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히 폐쇄적인 가옥 구조를 맞닥뜨리게 되고, 송련은 일부다처제의 가풍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겉으로는 송련의 적응을 도와주며 잘해주지만 뒤로는 송련에게 화를 가하려는 이른바 ‘화전양면전술’을 펼치는 둘째 부인과, 샘이 많아 송련을 미워하며 첫 날밤 까지 방해하는 셋째 부인의 모습이 자칫 을(乙)들의 전쟁처럼 보인다. ‘대감’이라는 갑(甲)의 간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는 처첩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남성우월적인 가계편성과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전쟁의 전리품으로 대변되는 ‘발마사지’는 자신의 부인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대감’의 필살기로 보여 진다. 패배한 채 다른 부인의 발마사지 소리를 듣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싫어서라도 필사적으로 싸우는 부인들에게 있어, ‘발마사지’는 단순한 마사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송련과 그의 심부름을 하는 몸종(연아)과의 갈등은, 단순한 주인과 일꾼의 갈등이 아니다. 이 둘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볼 때 계층 간의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연아는 끊임없이 송련에게 대들고, 송련은 그런 연아를 미워하며 과도한 일을 시킨다. 연아는 ‘대감’에게 선택받고 싶어 하지만, 종이라는 신분 때문에 불가능 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또래의 송련이 첩으로 들어오자 질투와 함께 송련이 괘씸해 보이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송련 역시 유교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연아에 대한 태도에서 상하수직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로 인해 연아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잊어버렸다.

송련의 실수로 인해 셋째 부인의 불륜행적(정부를 두고 있던 셋째 부인은, 사실상 4명의 부인들 중 유일하게 관습에 도전한 깨어있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이 들통 나고, 결국 셋째 부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송련은 미쳐버리게 되고, 대감은 다섯 째 부인을 맞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여기서 ‘대감’이라는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단 한 차례도 정면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은 채, 아주 작게 측면 혹은 뒷모습만 간간이 드러낼 뿐이다. 이는 ‘대감’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신의 부인들을 포함한 가문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얼어붙어버린 1당 체제의 중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의 배경은 1920년대의 중국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린다. 가부장제와 여성억압.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발현되는 방식이 변화했을 뿐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100년 전을 배경으로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이자 사회적 책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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