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거점대학이요 세계로 뻗어가고있는 대학이며 한국현대사를 주도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상지요 중심인 전남대는 우리들 모두의 자랑이요 영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대학을 세워준 큰 은혜를 모르고 앞만보고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몹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면서 전남대50년사편찬위원장을 맡게 되어 우리대학이 어떻게 설립되어 발전했는가를 깊이있게 살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남대는 국립대학이니 나라에서 세워줬고 나라에 의하여 운영되었다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60여년을 지내온 것이다. 전남대는 1982년에 30년사를 편찬했지만 전두환정권치하에서 살아남기에 정신이 없었던 상황에서 대학의 발자취를 살피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었으며 깊은 관심을 가지지도 못했다.
 
나는 50년사편찬을 맡아 전남대의 설립과 기반조성의 초창기역사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천만다행으로 전남도지사로 전남대설립기성회장이셨던 이을식선생을 찾게되었는데 이분은 100세가 넘으셨으며 3.1운동때 서울에서 왜경에게 잔혹하게 구타당해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애국심과 교육열에서 심혈을 기울여 세웠던 전남대 초창기의 참모습을 되살리는데 열정적이었다. 4시간이 넘게 전남대 설립에 바친 보람과 교육입국으로 승화시킨 애국자의 참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개교 50주년기념식에 참석해주시도록 간청하여 노구를 이끌고 불편하신 지사님께서 참석해주셔서 지금도 감격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전남대 문리과대학의 모체인 대성대학 설립
성현봉사(聖賢奉祀)와 지방교육을 위해 설립된 향교는 교육입국(敎育立國)의 뜻에서 1948년 3월에 대성대학을 설립해 문리과대학의 모태가 되었다. 대성대학은 문학과(국문학전공·영문학전공), 사학과, 철학과, 정치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로 출범하였는데 뒤에 정치학과에 법학전공이 신설되어 법정학부로 개칭되었다가 현재의 법과 대학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향교가 설립한 대성대학은 1952년 6월에 국립대학인 전남대학이 설립되자 문리과 대학으로 통합되어 현재의 문과대학, 사회과학대학, 법과대학, 그리고 자연대학으로 전남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남대 설립자금 부담
정부는 한국전쟁에 몰입하여 대학의 설립이나 운영에 정신을 기울일 수 없었기 때문에 1952년에 전남대를 설립할 때 아무런 도움을 줄 수없었다. 그리하여 대학의 설립은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그 직원만은 국가공무원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전남지사인 이을식선생은 애국지사였고 교육만이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킬수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전남대설립기성회를 조직하여 뜻있는 분들과 도민들의 정성을 모아 전남대설립에 필요한 자금 15억원~18억원을 마련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향교는 농지개혁으로 18억원의 토지 상환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을식선생은 향교재단과 깊은 논의 끝에 설립자금의 과반액인 9억원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일제 침략자들의 재산인 전남도시제사주식대금 6억 3천만원을 도민의 양해를 받아 전남대 설립에 활용하였다.
   
  
전남대의 종합대학출범에 공헌
향교는 9억원을 출연하면서 설립기성회장인 이을식지사에게 전남대가 명실공히 국립종학대학으로 출범하기 위해 기존의 전남도립의과대학과 도립농과대학 그리고 도립 목포상대를 전남대학에 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을식선생은 향교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나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남도의회의 결의가 있어야했다. 이에 지사는 도의원들을 설득하여 만장일치로 결의하게 하여 의과대학과 농과대학 그리고 목포상대를 국립전남대로 통합시켜 오늘날의 국립 종합대학인 전남대학교가 출범할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광주·전남향교대표들과 전남대 총장은 60여년이 지나 망각되어 버릴번한 향교의 거룩한 뜻을 기념하는 기록을 남기기로 하여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전남대인들은 이 일에  앞장서서 배은망덕했다는 비난을 받지않고 역사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지성인들이 되기 위하여 열성을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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