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기자가 된다면, 어떤 분야를 취재해 보고 싶어요?” “평소 관심 있는 취재 분야를 밝히고 그 이유를 쓰시오.”

언론사가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의 문항에는 가끔 이런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항을 접하게 될 때 내가 떠올렸던 답은 성매매 문제, 특정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 등이었다. 그러다, 최근 그 답이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5·18민중항쟁(이하 5·18)에 관한 이야기다. 더 자세히 말하면 5·18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제 그만해라”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며 광주 시민들 중 상당수가 5·18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아야 할 사실들이 많다. 바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5·18 이후의 삶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는 매달 ‘마이데이(My Day)’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이데이는 증언치유 프로그램으로 5·18 당사자 혹은 가족 중 한 명이 주인공이 되어 30여명의 참관인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내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총 11번의 마이데이가 진행됐으며, 이를 기록한 기록집이 지난해 12월 10일 발간됐다(책은 센터 홈페이지 자료실에서도 볼 수 있다).

가족밖에 모르던 한 가장이 평소와 같이 고사리 따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사라졌다. 남편은 35일 만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온 가장은 전과 달랐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경찰”이라 말했고, 아끼던 자식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밖에서 몽땅 쓰레기를 가져와 집에 쌓아놓고 저것은 돈이니 내다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31사단에서 35일간 갇혀 무슨 일을 당했는지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고문을 받았고, 많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내는 “아마 고문 받을 때 이곳에서 당했던 일을 밖에 나가도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이상해진 남편, 아빠를 보면서 가족은 고통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2년 뒤, 가장은 죽었다. 그 뒤로 아내는 아이 셋을 혼자 키우며 고된 일생을 보내야 했다. 마이데이에서 아내는 죽은 남편에게 “불쌍한 사람. 정말 미안해”라고 울며 말했다.

“꼭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아.”

故 문재학 씨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열한 번째 마이데이에서 한 말이다. 故 문재학 씨는 5·18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5월 27일 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김길자 어머님은 당시 아들의 시신을 확인했지만, 그 해 내내 문을 잠그지 못하고 잠들었다고 전했다. “아들이 꼭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아서.”

5·18 당시 희생된 희생자. 살아남았지만 남편을 잃은 아내, 아내를 잃은 남편,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자식, 도청이든 어디든 불의에 싸우다 고문 받았던 당사자, 그리고 이들의 모든 가족들까지…. 5·18 이후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억울한 사정을, 비참한 상황을 속 시원히 이야기 하지 못했다. 데모하다 죽었다고 하면 다들 손가락질 했다. 고난의 세월을 버티며 살아간 그들의 트라우마는 누구의 책임일까? 당사자 혹은 가족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이 외로이 죄의식을 짊어져야 하는 걸까? 그들은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피해자인데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3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5·18 당사자 중 많은 수가 자살을 했고, 살아남은 사람 또한 죽음 직전까지의 고통 앞에 무릎 꿇는 날이 많았다. 5·18의 고통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있어 제 삶도 있는 것 같아요.”

민주주의라는 혜택을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며 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들 덕분에 얻은 혜택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누리며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칼과 총에 맞서 피 흘렸던 그 자리에서부터 피어난 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 하며, 그들이 견디며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들어야 한다. 위로해야 하고 공감해야 하며 무엇보다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더더욱 5·18 당사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5·18 이후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굉장히 충격적일 것이며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것이다.

국가의 폭력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그 고통은 끝나지 않는 고통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고통을 알 필요가 있다.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되풀이 하게끔 만들지 않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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