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두어 시간을 자전거에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만 했다.
어렸을 적에 꿈은 많았지만 어느새 나의 꿈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꿈을 위해 살다가는 영영 나의 꿈을 되찾아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작정 나 좋아하는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떠났다. 자전거를 가지고. 차 뒤꽁무니를 쫓으며 먼지를 들여 마신지도 400일. 그렇게 바큇자국을 11개 나라에 남겼다.

“나의 꿈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과학자였고, 축구선수였으며, 때론 대통령이었고, 작가가 되기도 했으며, 우주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자주 꿈이 생겼다가 없어지곤 했다. 꿈이 없어져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눈을 뜨면 새로운 꿈이 다시 새롭게 생겨났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꿈을 먹으면서 꿈을 키워가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넌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 아무 대기업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면, “어, 그래 나도”라는 말이 돌아온다. 진지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어쩌면 우리네의 대화가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 가 없다. 그런데 별 수 있나. 우리의 꿈은 취업이라는 벽 앞에서 꾸깃꾸깃 팽겨쳐진지 오래인데. 아니 꿈 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취업의 벽이 이렇게 거대한 줄 몰랐다. 이제까지 써 내려왔던 자소설의 양을 쌓아서 밟고 올라서면 그 벽을 훌쩍 뛰어 넘겨도 남을 양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귀하는 훌륭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자는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지만, 여전히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서 자소설을 위한 ‘CONTROL+C/ V’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하루도 ‘CONTROL+C/ V’ 되듯 똑같이만 흘려가려던 참이었다. 한 칼럼이 내게 이상한 질문을 던져 주기 전까지.

“당신은 누구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그 칼럼을 보지 말아야 했을까. ‘당연히 내 인생에 내가 살고 있지 누가 살고 있나’ 라며 콧방귀 뿡 뀌며 넘겨버렸어야 할 그 질문은 나의 생각을 사로잡고는 떠나지 못하게 했다. 왠지 모르게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문장이 나의 지난 시간을 부정하려던 참이었다.

내 인생인데 내 인생이 아닌 것 같은 기분, 그 곳에 나만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앉혔다. SSAT 책을 펴는 대신 빈 노트를 준비했고, 1분 자기소개를 생각하는 대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나씩 적어 내려가 볼 참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20여년을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앞을 내다 보면 더더욱 깜깜할 뿐 내가 도대체 어디에 어느쯤에 와있는지 감히 예상하지도 못하겠다. 그 ‘무엇’ 찾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려던 중에 마음 속 깊은 곳에 꼬깃꼬깃 쑤셔넣어 두었던 ‘하나’가 생각났다.

▲ 외국에서는 모두가 애국자라더니,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저 태극기 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너의 꿈은 세계정복이니?”
자전거 세계여행. 언제부터인가 세계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자전거로 하는 것이라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나의 100살 인생 중에서 보지 못한, 안 가본 나라가 있다면 참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래 대학을 졸업하기 전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자’ 라고 생각했던 것이, 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루로는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일주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심난했으리라-이불 속 에서 보냈다. 어찌보면 이렇게 고민걱정의 꼬리를 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 이다. 그 누구도 무엇이 되라고 말을 해주었을 뿐 어떻게 살라고는 알려 준 적이 없으니까.
자전거세계여행이라는 나의 꿈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하자 함께 취업을 고민했던 친구에게 말했다. “나 자전거세계여행 떠날꺼야. 한없이!” 친구로부터 부러움을 얻을 줄 알았는데 그들의 걱정만이 나의 어깨를 짓누를 뿐이었다.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당돌한 외침은 그들 귀에는 그들 귀에는 ‘세계정복’이라는 정말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나 보다.

“취업준비생이 아닌 행복준비생”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야. 지금은 그 날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고.”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항상 준비만 하지 않았나. 고등학교 때는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취업을 하면 노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매일 같이 오지 않는 내일을 준비하면서 살다보면 나의 오늘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취업 물론 중요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중요했고,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도전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고, 어쩌면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으며, 마냥 좋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취업준비생’이기 이전에, 내 인생에서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행복준비생’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호주에서의 첫 외박. 에보리진은 위험하다는 소문에 과도를 꼬옥 쥐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잠에 들 수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보다는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것”
여행 시작 한 달이 채 지나가기 전에 자전거와 함께 모든 짐을 도둑 맞았고, 히말라야를 오르며 고산병과 저체온증으로 죽을 고비도 넘겼다. 비 오는 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으며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10만원을 내고 택시를 탔더니 그 비행기는 야속하게도 눈 앞에서 떠나고 말았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씻지 못해서, 얼굴에 때가 껴서, 국경을 넘을 때 여권은 검사 되지 않았고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어 감옥 갈 뻔 했지만, 감옥 가기 정말 싫어 경찰과 뒷돈을 건넸다. 그렇게 호주를 시작으로 인도 네팔 오만 UAE 이란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총 11개국 을 400일 동안 여행했다. 낭만적일 것만 같았던 지난 시간은 결코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보니, 퍽 낭만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 다녀와서 바뀐 것 이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해서 불안하며 오늘을 후회하고 게을러지는 것은 한 순간 이었다. 이렇게 여행은 나의 평범한 나날 중 하루 였을 뿐이었다. 나의 시간 안에 여행이 담겨 있던 것이지 여행한다고 해서 나의 시간을 떠나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다만 꿈은 생겼다.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공무원이, 사업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신 어떻게 살지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지금의 최대 고민이자 꿈이다.

어떻게 살지는 잘 모르겠으니깐 계속 고민해보고 그것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들의 기대가 아닌 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을 쫓으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기 때문에 늦는 것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하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서 후회만 있을 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더욱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