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에는 약 810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있습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도 모르게 그들을 피해본 경험이 있지는 않나요? 외국인 유학생들이 그려내는 특별하기도, 평범하기도 한 하루를 <전대신문>이 함께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 탄 도(Tan do) 씨(해양토목 대학원생)와 함께했던 하루입니다.

하루의 시작

“버스 타러 가야해요!”

아침부터 서두르기 바빴다. 가파른 등굣길을 편하게 가려면 교내 순환버스를 타야했다. 여느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버스에 올라타자 여기저기서 인사말이 들렸다. “형, 안녕하세요!”, “아침은 드셨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한국말 공세에도 탄 씨는 익숙한 듯 모두 대답해주었다. 한국에 온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는 그는 “한국 친구들이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다”며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한국인 친구가 꽤 많은 것 같다”는 질문에 탄 씨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인 친구는 꼭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에 처음 와서 제일 먼저 다짐한 것 중 하나가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 친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생활관 헬스장을 꾸준히 이용하곤 했다. 그는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곤 했는데 거리낌 없이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여서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자신과의 싸움도 시작됐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 탓에 여간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직 한국어가 완전하지 않아 전부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며 “수업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중을 한다”고 했다.

실험을 위한 만발의 준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곧 점심시간이었다. 탄 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소개시켜준다며 길을 안내했다. 다름 아닌 뼈다귀 해장국. 게다가 단골손님이었다. “또 왔네! 뼈(뼈다귀 해장국)지?” 단번에 그를 알아본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이함과 동시에 주문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같다”며 “내 아내도 뼈다귀 해장국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탄 씨의 발걸음은 연구실로 향했다. 그러나 연구실에 도착한 그의 모습은 연구가 아닌 의자를 젖혀 눈을 감는 모습이었다. 낮잠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밤이 늦도록 하게 될 실험을 대비한 체력충전이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대학원생인 그가 써야 할 논문에 수많은 실험결과가 필요한데 실험만 보통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건설할 때 쓰이는 주성분이 콘크리트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아 매일 점심을 먹고 난 후 1시간 씩 휴식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외국인이라서 힘들다? 어렵지 않아요!”

잠깐의 휴식이 끝나갈 때 쯤 탄 씨는 외국인 친구들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인이라서 차별받는 건 어떻게 보면 부당하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하지만 낯선 대상을 경계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심리이지 않냐”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의 매정함에 호소할 줄 알았던 기자의 생각은 어긋났다.

탄 씨는 오히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비판했다. 그는 “출생지만 다를 뿐 소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어를 공부해서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한국에 적응을 못하고 겉도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종종 본다”며 “조금만 노력하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빨리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막간의 이야기를 마쳤다.

실제 여수캠퍼스 기획협력팀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언어소통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44%로 가장 높았다.

탄 씨의 한국 생활도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한국에 처음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의사소통이 힘든 점과 가족의 그리움이었다.

탄 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당시,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몰랐다”며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언어적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내 한국어 실력은 일상 대화를 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그 비결은 바로 기숙사 룸메이트 덕분이다”고 했다.

그는 “그가 나의 첫 한국어 선생이자 한국인 친구였고, 그 친구 덕분에 한국어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또 “한국의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여수에 있는 한국 친구들은 모두 친절한 것 같다”며 지역민과 우리 대학 학생의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잠시 후 갑자기 누군가와 웃음 가득한 통화를 하는 탄 씨. 통화너머의 정체는 바로 그의 아내 항(Hang) 씨(토목환경공학·4학년)였다. 결혼한 지는 3년째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결혼을 하고 한국에 유학 와서 현재 학교 앞 원룸에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있어서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며 “내가 이렇게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것도 전부 내 아내 덕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점심을 항상 같이 먹는데 오늘은 같이 먹지 못했다”며 눈치 아닌 눈치를 주곤 웃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휴식이 끝난 후에 탄 씨는 곧장 논문 책을 챙겨 책상에 앉았다. 해야 할 실험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고된 실험을 한지 네 시간 정도 흘렀을까. 항 씨가 저녁을 챙겨왔다. 그들에게 “고향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얼른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밤이 깊어도 그의 논문 연구는 계속됐다.

연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꿈을 물었다. “행복”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당황한 기자를 바라보며 그는 “‘행복’이 내가 사는 이유고 꿈이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서 교수의 길을 걷고 싶다”며 “내가 느끼는 행복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자정이 되고, 탄 씨의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했다.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을 것 같았던 외국인 유학생의 하루. 분명한 우리 대학의 구성원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를 줄 알았던 외국인 유학생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 그대로였다. 한국의 환경과 문화가 달라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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