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5·18 바로 알리기 얼굴 인증 캠페인’을 진행하는 모습. 학생들은 ‘나에게 5·18이란?’이라는 질문에 답을 적고 인증사진을 찍으며 5·18의 의미를 되새겼다.

5·18 민중항쟁(5·18) 35주년인 2015년에도 5·18을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고, 잘못된 유언비어가 진실인 양 떠돌고 있다. 그 중 유언비어 3가지를 꼽아 답해 보았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간첩이나 불순분자였다? 
대학생들 중심으로 시작된 항쟁이 진행되면서 시민, 중·고등학생, 노동자, 농민 등 모든 광주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야말로 전 시민, 민중이 참여한 항쟁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부상자를 위한 헌혈운동에도 다수 동참했으며, 일부는 시민군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부 보수단체에서 마스크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 신분이나 연고를 알 수 없는 피해자들을 간첩이나 불순분자로 왜곡해 5·18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시위대가 먼저 계엄군에게 발포했다?
최초 발포는 19일 계엄군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조대부고에 다니던 학생이 총상을 입었다. 이어 20일에는 광주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공방이 치열해짐에 따른 계엄군의 발포로 비무장 시민 2명이 숨졌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21일 도청 앞에 모였는데 이곳에서 공수부대의 집단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무장을 시작한 것이다.

광주에서만 일어난 사건이었다?
5·18은 광주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광주 외에도 ▲나주 ▲목포 ▲화순 등 서남부 지역으로 항쟁이 확산됐으며 계엄군이 북·동쪽으로 향하는 연락망과 도로를 봉쇄해 다른 지역 사람들은 언론의 보도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언론은 5·18을 폭동이라 낙인찍었고, 시민들을 폭도라고 매도했다. 덧붙여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을 잡아가고 고문하였기에 유가족들조차 사실을 말하기 힘들었다. 6월이 지나서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 학살자 처벌 등을 요구한 5월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아직까지도 지역감정을 이용해 5·18을 광주만의 일로 축소하고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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