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시간은 순환하며 바뀌는 자연의 시간을 닮았다. 두 개의 학기가 모여서 1년이 되고, 그런 1년들이 모이다보면 학교 구성원들이 바뀌어 있다. 이제 또 다시 4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친 여러분들이 학교를 벗어나려고 한다. 이 시간이 졸업생 여러분들에게는 알을 깨고 나오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학교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든 사회 속에서 각자 자신의 날개 짓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해마다 대학교의 졸업식이 있을 때면 나는 우주를 떠올리곤 한다. 사회에 진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를 수놓은 별처럼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인간이 각자 자신의 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별을 관찰하면서 개개인의 운명을 예언하곤 했다. 그렇다고 옛사람들이 운명에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오는 딜런 토마스(Dylan Marlais Thomas)의 시는 인간이 별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준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요./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

그렇다.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별을 보며 살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도 윤동주보다 훨씬 도발적인 자세로.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노래하였다.

사실 윤동주는 범인이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서시>에서의 그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나는 졸업생들에게 윤동주보다도 치열하게,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흔히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 졸업생들도 4년간의 학교생활을 하면서 소위 스펙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을 자신의 이력서에 포함시켜왔다. 하루 24시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노력을 경주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스펙들이 곧바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스펙들 중에는 실제 취업 과정에서, 혹은 취업 후의 직장생활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내 경험으로 보면 1980년대의 학생들에게 요구되던 스펙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80년대의 졸업생이 오늘날의 학생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나 판단력이 뒤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단적이며 고정된 교리에 갇혀있는 세계관입니다. 이 독단적이며 고정된 세계관은 우리를 감금하고, 혁신을 할 수 없게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우리의 열려있는 마음을 파괴합니다. 인간이란 종(種)은 이 행성에 25만년 살아왔습니다. 그 기간은 생물이 지구에 존재한 시간과 비교하면 0.0015%입니다. 우주적인 길이에 티끌입니다.” 고생물학자인 굴드(Stephen Jay Gould)의 말이다.

우주에서 빛나는 별처럼, 우리 사회에서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이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티끌 같은 인류의 역사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자각한다면, 여러분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릴케는 시인이 되려는 젊은이에게 우리가 알 수 없는 문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대할 때 쉽게 해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대신 릴케는 그 문제를 몸으로 받아들여 그 문제와 함께 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먼 훗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道)위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삶을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가 이런 것이리라. 나 역시 우리 졸업생들에게 릴케의 조언을 반복하고 싶다. 마주하는 모든 것에서 질문을 구하고, 그 질문과 함께 살라고 말이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