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는 사회 바꿀 수 있는 동력”…“내년 개봉 예정인 차기작은 방송기자 이야기”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던 실화를 다룬 영화 <카트>. 많은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해 부들부들 분노하며 극장을 빠져나왔다. <카트> 시나리오를 통해 데뷔한 김경찬 작가(신문방송·88)는 15년간 목포 MBC에서 PD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만의 시선을 글에 녹였다. <전대신문>이 지난달 28일 문흥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카트> 속이야기와 그가 20대에게 전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어떻게 <카트> 시나리오를 쓰게 됐나.
2010년 겨울, 한 달 만에 쓴 시나리오 한편을 유명 제작자 4명에게 보냈다. 연락 온 사람들 중 1명이 <카트>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이사였다. 이후 그에게 <카트> 시나리오를 부탁받아 쓰게 됐다.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집중한 장면은
태영(도경수 분)이 편의점에서 임금을 못 받아 편의점 사장과 티격태격하고 파출소로 넘어가는 두 장면이다. 이는 현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위해 설치한 것이다. 편의점 사장은 업주, 태영은 노동자를 상징한다. 태영의 엄마인 선희(염정아 분)는 파출소 장면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상징한다. 선희는 임금체불과 노동자 폭행이 일어난 상황을 정리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약자의 편에서 정리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기업은 놔두고 노동자만 팬다. 선희가 지금의 국가였다면 ‘쓸데 없이 사고치고 다닌다’며 아들만 팼을 것이다. 이 아이는 돈도 못 받고 사업주에게 맞고 엄마에게 또 맞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하겠나. 그 상황을 선희가 이상적인 국가로써 돈이 아닌 약자, 국민의 편에서 해결한 것이다. <카트>의 핵심은 두 장면에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태영의 친구 역할인 수경(지우 분)이다. 주인공이나 주인공 아들은 영화에 작가의 의도를 개입시키기 쉽지 않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비정규직이라는 현실도 있기에 그들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는 이미 선이 정해져있었다. 그 영역을 벗어난 인물이 수경이다.

수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
수경은 자기가 훨씬 가난함에도 태영에게 손을 내미는 캐릭터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실제 인물들은 만나봤나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해고 사건의 주인공은 한명도 만나지 않았다. 실제 인물들을 만나면 그들의 감정에 동화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사건인 홈에버 파업에 매몰돼 현재의 이야기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못 보게 될까봐 상상 속에서만 캐릭터를 만들었다.
반면 감독은 그 사람들이 뭘 먹고, 입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야했기에 많이 만났다. 감독은 자꾸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을 가깝게 이야기하려고 했고 나는 최대한 물러서 객관적으로 쓰려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절충점이 지금의 <카트>다.

영화에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어떤 의도로 넣었나
지금 비정규직의 투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간혹 승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사례를 거의 찾기 힘들다. 승리한다고 해도 그만큼의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계란과 낙숫물일지라도 계속 두드리면 깨질 가능성은 있다. 지금 당장 깨지지 않는다고 해서 두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안 깨진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관객들의 선입견을 피해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수십 년간 미디어를 통해 본 노동자는 파업 조끼를 입고, 노래 부르고, 주먹 쥔 손을 흔들고, 폭력적 행위를 하는 중공업 계열의 노동자였다. 그래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런 선입견을 깨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50~60년간 학습된 선입견을 두 시간 만에 어떻게 깰 수 있겠나. 이런 선입견을 절묘하게 피해가면서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난제 중 하나였다.
잘 보면 영화 속 노동자들은 파업의 상징인 붉은 머리띠를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파업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분홍색 티를 입는다. 파업 조끼도 남색이 아닌 노란색 계열 옷을 입는다. 다 사람들 머릿속 선입견을 피하기 위한 장치였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의 방해는 없었나
없었다. 대신 마트들이 공간을 빌려주지 않아 세트장을 짓고 CG처리를 하는 바람에 제작비가 6억 정도 더 들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지만 20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해결법이 있을까
지금처럼 조직도, 동력도 없는 20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각자가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대학생들은 ‘나는 비정규직이 안 될거야’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피해볼 사람은 지금 대학생들이다. 현재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증가 속도를 보면 지금 대학교 1, 2학년이 졸업할 쯤에는 8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해결 방법은 정말 없나
<카트>는 ‘네 일이 아닌 것 같지? 실은 네 일이야’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이미 비정규직 사회가 됐으니 준비해라’고 말해주는 것밖에 없다. 정규직이 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다. ‘내가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정규직이 되더라도 평생 사업주로부터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신세’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인식이 모여서 연대를 만들고, 연대가 모여서 힘을 만든다. 연대를 바탕으로 힘이 만들어졌을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동력과 조직이 생긴다.

차기작도 준비 중인가
첫 번째로 쓴 시나리오가 내년에 개봉한다. 방송기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방송사에 오래 있었으니 기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잘 알기에 썼다. 출세지향적인 월급쟁이의 길을 택한 한 기자가 그 길을 달려가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이야기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직업의식과 취재윤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월급쟁이다. 그 둘 사이의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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