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하늘의 백두산 천지의 모습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38명의 학생들이 백두산 역사기행을 떠났다. 총학생회가 주최한 행사로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4박 5일간 독립군의 감사함을 느끼고, 통일에 대한 단상을 그려보기 위해 마련됐다. 그들의 4박 5일 여정을 따라가 봤다.

두만강 너머로 만난 북한 주민들
18일 비오는 새벽 5시, 여정은 시작됐다. 중국 장춘(長春)에 도착했지만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기대했던 항일 유적지인 육문중학교와 북산공원을 짧게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날 도착한 두만강.

두만강은 북한과 중국 사이 국경을 흐르고 있었다. 중국 국적의 차량이 두만강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가지 못하는 분단의 아픔이 느껴져 마음이 착잡해졌다.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두만강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두만강을 건너 국경을 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고 말하는 가이드의 설명은 어딘가 아프게 다가왔다. 두만강의 폭은 넓지 않아서 꽤 가까이에서 북한땅을 볼 수 있었다.

보트를 타고 두만강을 둘러보는 그 때 “저기!”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북한쪽에서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보였다. 소리를 들은 학생들 모두 일제히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찰나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북한 주민에게 손을 흔들던 조은애 씨(식품영양·11)는 “이렇게밖에 인사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를 향해 손을 먼저 손을 흔들어 준 '만날수 없는 우리 민족'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이었으리라.

중국 관광지로 변한 백두산
그리고 이번 역사기행의 정점. 드디어 백두산을 마주할 순간이 왔다.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명성을 얻던 산이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중국의 관광지가 됐다.

“백 번 올라가서 두 번 밖에 못 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해발 2,200m에 위치한 천지를 보러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직접 산을 걷지 않고도 버스로 천지 밑까지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관광지로 이용하기 위해 백두산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천지를 보러가는 1,442개의 계단은 만만치 않았다. 많은 학생들이 700번째 계단에서 고비를 맞았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숨을 고르고 다시 천지를 보기 위해 힘을 냈다. 그리고 도착한 천지.

“덕을 잘 쌓았나 봐.”

1,442번째 마지막 계단을 밟으며 바라본, 깨끗한 천지는 구름 한 점까지 담고 있었다. 조수인 씨(신문방송·11)는 "'오늘 아니면 다시는 이곳에 못 오겠지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고 말했다. 한켠에 있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를 보니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경계비를 기준으로 30m 남짓 되는 북한 땅. 중국 관할지 옆에 있는 북한 땅을 학생들은 한번이라도 밟아보고 싶은 마음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광개토태왕릉에 계단이 생겨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
훼손된 '광개토왕릉'에 씁쓸
4일째는 고구려의 숨결을 느끼고자 집안(集安)시로 향했다. 집안시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으로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장군총, 광개토태왕비, 태왕릉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다.

고구려의 찬란했던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은 금세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장군총은 디딤돌 하나가 없어져  한쪽 면이 무너져갔고, 광개토태왕릉에는 계단이 만들어져 누구나 묘 위를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 한국인은 “저렇게 왕릉을 밟고 올라가게 내버려둬도 되는 거냐"며 관광객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광개토태왕비도 훼손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광개토왕비는 일본이 침략당시 불을 지르고 시멘트를 발라 훼손시켰고, 이후 복원 관리되지 않은채 '버려져' 있는 상태였다. 임락홍 씨(전기공학·09)는 “중국이 관광지로 이용하면서 관리도 허술해져 더 화가 난다”며 “이렇게 관리할거면 우리한테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역사, 우리가 지켜야
마지막 날 심양(瀋陽)에서 고궁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번 중국 문화 탐방 일정을 끝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단의 아픔을 느꼈고, 찬란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화가 났다. 윤동주 시 ‘래일은 없다’에 “새날은 찾던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 돌보니 그땐 래일이 아니고 오늘 이더라”는 시구가 있다. 일제치하 해방의 그날만을 마냥 기다리지 말고 노력하자는 의지를 담은 그 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백 번 올라 두 번 본다는 백두산 천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간절히 빌어봤다. 남은 한번은 북한을 통해 갈 수 있길,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우리가 지켜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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