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진물이 나와"
6·25 당시 피난길에 미군 전투기가 쏜 기관총에 맞아 이교순 씨(대전 유성구)의 발은 다섯 발가락 중에 세 발가락은 굳어 버리고 휘었다. 그는 "미국 폭격기가 들어오고 미군들이 사람들을 무참히도 죽였다"며 "나는 그 참혹한 광경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말하낟.
이씨는 증언대회 내내 우리 정부와 미국을 "도둑놈"이라고 지칭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흉측하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고통만 더 실려왔던 발. 그의 삶은 '발'로 인해 지금까지 스스로 생계유지조차 못한채 순탄티 못하게 흘러왔다. 그는 "처음에는 부모한테 얹혀 살다가 오빠와 올케언니한테 얹혀지내다 그 분들마저 돌아가신 후, 두 여동생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는 것이다.
3년 전인 1999년에 정부로부터 겨우 장애 1종을 받고 서민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지만, 세금과 병원비 등으로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자기 사리사욕만 챙기고, 미국놈들에게 아첨을 떠는 고위층 인사와 대통령을 보면 너무 억울해서 욕만 나온다"며 터져나오는 울분은 그의 삶이 돼버렸다.
이 씨는 이런 삶이 너무 분해서 그 힘든 발을 이끌고, 미국을 갔다고 한다. 이씨는 미군을 고발해 민사 재판을 했고, 재판 결과 미국측이 잘못했다는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분명한데, 잘못했다는 인정만 하고 아무런 보상도 없는 현실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혼자이다.
올해 감기를 앓으면서 폐렴까지 악화되고, 이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끌고 다녀야 한다는 이씨. 어떠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었던 미국과 정부의 무책임으로 이젠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거침없던 양민학살의 상흔은 이렇게 그가 혼자 설 힘마저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전대기련 5·18 공기단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