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연구년을 맞아, 전반기는 호주에 있는 퀸즈랜드 대학(University of Queensland; UQ)에서 지냈고, 후반기는 말레이시아 페낭에 있는 말레이시아국립과학대학(University Sains Malaysia; USM)에서 생활하였다. 이 두 대학에서 경험한 것들 중에서  새시대에 걸맞게 느껴진 수업방식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전통적인 교실 뒤집기  
UQ의 심리학부에 도착했을 때, 교수의 양해를 얻어 마침 시작되는 교과목을 하나 청강하였다. 강의의 내용만큼이나 내 호기심을 끈 것은 이 강의의 운영방식인 “뒤집힌 교실”(Flipped Class) 이었다. 이 강좌는 120 명의 학생이 등록하였고, 일주일에 한번 두시간 분량의 수업이 진행되며, 튜토리얼 시간은 별도로 진행되었다. 매 강좌에 교수가 두 명의 조교와 들어와서 매 시간 새롭게 구성되는 소모둠 별로 둘러 앉아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준비된 활동 수업을 전개하였다. 기존의 강의 방식과 달리 ‘뒤집힌 것’은 바로 ‘강의와 과제하기’였다. 전통적인 강좌에서는 강의가 먼저 이루어지고, 강의 내용과 관련된 과제 혹은 시험이 그 후에 진행된다. 그러나 ‘뒤집힌 교실’에서는 강의 동영상이 먼저 가상대학 공간에 올려지고, 학생들은 이를 보고 수업에 들어온다. 수업시간에는 강의 대신, 올려진 강의에 대한 질문을 주고 받고, 대부분의 시간은 강의 내용과 관련된 활동(activity)을 교수가 마련하여 모둠별로 수행하고, 그 수행 내용을 발표하고 논의하고, 말미에 교수가 그 날의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이 5분 남짓 이어진다. UQ에서는 이 방식의 강좌가  몇 해 전에 시작되었고, 현재 전 강좌의 10%가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형태의 강좌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매 학기에 대학 본부에서는 이 강좌를 보급하는 웍숍을 진행하고 있으며, 나도 참가할 수 있었다. 이 강좌를 참관하면서 나는 내가 해왔던 강의방식을 되돌아보고, 그동안 나름대로 개선하고자 노력해 왔던 강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즉, 21세기에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교육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를 갖게 되었다.

교육의 혁신적 변화 노력
연구년의 후반부를 보낸 말레이시아의 USM대학은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섬 페낭에 자리하고 있다. USM은 우수한 공립대학으로 21세기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치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고등교육의 전환(Transforming Higher Education for a Sustainable Tomorrow)“을 내걸고 교육의 혁신적 변화 노력을 펼치고 있었다. 도착한 며칠 후, 사범대 학장에게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더니, 당일 9시부터 3시간 동안 “세계적 수준의 대학교육”이라는 주제로 그 대학의 교수학습지원센터(cdae.usm.my)를 맡고 있는 카림 박사(Dr. Karim http://onestoplearning.blogspot.kr/)가 주도하는 워크숍이 진행된다기에 참석하였다. 교육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식품공학자인 카림 박사는 대규모 온라인 무료강좌(MOOC)가 성행하는 작금의 시대에 과연 대학교육이 어떻게 소용가치를 만들어가며 시대에 적합한 교육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색이 필요함을 진지하게 언급하면서, 사범대학 교수들의 동참과 협조를 겸손하지만 확고한 말투로 요청하였다. 이 날의 워크숍은 3시간이었지만, 새로운 교육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USM의 노력은 거의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고, 독려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그 예로 10월 하순에는 총장단과 수 백 명의 교직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 “새로운 교육문화”(New culture of learning/teaching)라는 주제로 하루 종일 열리는 것을 참관할 수 있었다. 

카림박사는 영화 아바타의 제작자 존 란다우가 작금의 교육에 대하여 “21세기의 교사들은 배움의 현실과 무관한 사람들이 될 위험(at the risk of becoming irrelevant)에 처해 있다”라고 한 경고를 소개하였다. 나는 25년이 넘는 동안 강의를 어떻게 해왔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여, 강의 형태를 변화시켜 왔었지만,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고전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으므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의 내용을 결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관심이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토론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전히 교수하고만 상대하고, 배워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이었다. 학생들이 가진 IT역량과 판단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배울 내용을 탐색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주어진 내용을 배우고, 주어진 과제를 해 내야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나는 내 강의보다 훨씬 유익한 강의가 인터넷에 있을 가능성을 알면서 그것이 한국어로 제공되지 않으므로 학생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겨 거의 무관심해 왔던 것이 아닌가 자문하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칠판을 스마트보드로 바꾸고 PPT를 사용하는 것으로 21세기에 걸맞은 교육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학생-교수관계 및 대학강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의 학생들은 더 이상 전문지식을 위해서 교수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교수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는 구글, 위키피디아, 네이버 같은 강력한 온라인상의 도구가 있고, 대규모 무료 강좌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이다.

21세기 대학의 기능
과연 21세기의 대학이 현 상태로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교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다행히도 적지 않은 사람과 기관들이 이 문제를 다루어 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문화의 특징은 개방성과 접근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에게만 열려있던 소통의 장이 ‘학생과 학생 사이’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이 소통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IT 환경(페북, 구글 드라이브 등)을 경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나름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필요한 부분을 깨닫고, 체험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의 강의실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선진 교육의 문화는 닫침-대중적-공급자 중심에서 열림-개별적-수요자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에서는 창의적 사고가 더욱 가치를 발하게 되고, 타인과의 소통을 통한 협동 작업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가 지식의 가치를 판단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적인 교육철학 아래 기술적인 발전만을 강의 전달 방식에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뒤집힌 교실'을 만들자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뒤집힌 교실”은 현 시대의 교육환경에 부응하는 유용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의의 골격은 교수가 결정하되, 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을 잘 파악할 수 있고, 학생들이 강의실 안팎에서 수행하는 활동을 통해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관여된 상태에서 배움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협업하는 것을 실습해 가는 마당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교수는 이제 강의자(instructor)의 역할을 줄이고, 안내자 혹은 매개자로서의 비중을 더 키워야 할 것이다. 교수 스스로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역할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교수의 어깨는 더 가벼워지고, 유익한 강의를 학생들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본고를 먼저 보시고 공감과 더불어 제안을 해 주신 몇 분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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