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세계 패권을 다투는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정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큰 사건이 얼마 전에 한반도의 인근 지역인 동중국해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23일 중국 정부가 정식으로 동중국해에 자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이에 즉각 대응하여 26일에 두 대의 폭격기를 해당 해역에 보내어 군사 훈련을 강행했다. 일본도 항공기와 함정을 동원하여 미국을 거들고 나섰다.

미국은 냉전 시대의 최적수였던 소련이 1991년에 붕괴하자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정치를 좌지우지하려 했지만, 갑자기 2001년에 9·11 사건이라는 복병을 만나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미국의 원래 기대와는 달리 장기전이 되어 버린 이 두 전쟁은 미국을 심각한 재정 적자에 빠뜨렸다.

바로 이러는 사이에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궐기해 버렸으며,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경은 몹시 착잡한 것이었다. 중국의 궐기에 당황한 미국의 오바마는 2012년 초에 ‘Pivot to Asia’를 외치며 아시아 중시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미국은 최근에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지지하고 나섰는데, 이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 힘겨워진 미국의 고육지책의 선택이었다. 당연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일본은 미국의 지지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곤란해진 것은 우리 한국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관계가 악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이런 일본 두남 들기는 우리 한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최근의 미국과 일본의 상호 유착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기초를 근본부터 뒤흔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적수이자 전범 국가 인 일본과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모습은 그리 떳떳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상의 자기 몫을 주장하는 데 거침이 없다. 이번의 동중국해에서의 방공식별구역의 선포는 그 첫 시도일 뿐이다. 중국은 더 이상 현상 유지(status quo)를 원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 · 일본 · 미국의 세 방향에서 오는 심각한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미·일의 삼각동맹에서 상대적 지위 하락과 중국의 위협을 배와 등에서 동시에 받는 꼴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이후 1년 내내 부정선거 혐의로 심한 홍역을 치르고 있으며, 잦은 외국 나들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외교적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안이 평안해야 밖에서 힘을 쓸 수 있는 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와 대북한 관계 개선의 엔진을 재가동하여 내부부터 평안하게 해야 한다. 북한과의 평화 관계는 밖에서 매우 유효한 외교적 지렛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미국과 일본에게 우리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며, 우리의 국익에 반할 때에는 그들과 협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그저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우리의 주요 경제 파트너가 되어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 받을 것이며, 나아가 과거의 냉전을 한반도에서 다시 재현하는 불행한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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