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사상에서는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답하였다고 한다. 공자는 이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이라고 표현하였다. 물론 이 말은 신분제사회였던 당시의 사회에서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불변의 질서로 보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 부합한 실재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오늘날에도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다. 서양의 사상에서는 이를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동양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임의적인 명명법이 사용되는 것 같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처참한 폭력과 학살이 발생하고, 거기에 맞서서 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한지 벌써 33주년이 되었다. 광주사태라고 불렀던 당시는 차치하더라도 오늘날 그 사건을 지칭하는 이름도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부르지만, 기념식장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는 여전히 ‘광주폭동’이라고 부르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다.

이름과 개념을 갖고 한국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는 “…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권위주의권력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남몰래 그리던 이상향을 지칭하는 것이며,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을 그리면서, 숨죽여 흐느끼면서 숨어서 몰래 쓰던 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주의라는 말은 누구라도 하는 말이 되었다. 독재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불만(?)이 많은, 말 많은 사람들은 다 감옥에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사람들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실재와 이름이 부합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이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빼앗겨버린 것이고, 그 이름이 지칭하던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어떠한가? 대학생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대학생답게 행동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취업과 관련된 경력 및 능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물론 취업준비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한다면 너무 대학이 하찮아지는 것 같다. 개성이 강하고 멋이 있는 대학생,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대학생,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면서 공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대학생, 이런 대학생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과욕일까? 그래도 나는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그래서 그 꿈에 온 몸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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