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래도 테이프 자국 등 훼손 심해…“역사적 시설 대한 보호 필요”

우리 대학에는 5·18 민중항쟁을 재현해 낸 첫번째 벽화 ‘민중항쟁도’가 있다. 사범대 1호관에 그려진 벽화, 이 벽화의 이름이 민중항쟁도다.

민중항쟁도는 1990년 6월 광주민중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다. 가로 10m, 세로 16m에 이르는 민중항쟁도는 동아리 그림패 마당, 예술대 미술패 신바람, 참교육민족미술연구소, 미술교육과 등 4개 단체 50여명이 일주일동안 작업해 완성된 것이다.

민중항쟁도의 중앙에는 왼손에 소총을 든 단단한 시민군의 모습이, 왼쪽에는 광주항쟁의 마지막 접전 장소이던 도청이 자리하고 있다. 도청 벽면에는 ‘혁명광주는 지금도 계속 된다’는 띠가 나부끼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군용 지프차를 탄 시민군과 물품을 실어주는 시민들이 보이고, 청년 한 명이 ‘민족해방’ 네 글자가 선명한 깃발을 들며 굳건한 자세를 보인다. 아래에는 가마솥, 주먹밥 등 5·18 민중항쟁의 공동체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주먹밥' 2013년 3월호, 5·18 기념재단 참고) 이렇듯 민중항쟁도는 1980년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민중항쟁도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그 모습대로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지난해 우리 대학은 사범대 1, 2호관을 허물고 교육융합센터 건설을 추진했지만 교육부 심의에서 1호관이 제외됐다. 민중항쟁도가 사라질 위기는 넘겼지만 색이 바래고 테이프 자국이 남아있는 등 많이 훼손된 상태다. 김희송 교수(사회)는 “표현 방법에 있어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벽화는 우리 대학이 가지고 있는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시설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우리 대학에는 민중항쟁도 말고도 벽화가 하나 더 있었다. 1992년, 공과대 학생회가 학원자주화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예술대 학생들과 광주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 등의 내용을 담은 벽화를 공과대 5호관 벽면에 그렸다. 하지만 대학 본부가 2008년에 건물을 도색했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는 학생회의 반대가 있었지만 끝내 벽화가 손실됐다. 대신 벽화가 그려져 있던 위치에 가로 1m, 세로 1.2m 크기의 동판을 걸어놓은 상태다. 교직원 ㄱ 씨는 “역사적인 변화를 단숨에 치워버린 것은 대학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이다”고 말했다. 이에 본부는 “건물이 낡았기 때문에 더 좋은 환경을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우리 대학 벽화에 대한 논쟁은 온라인에서는 더욱 심하다. 온라인에서는 벽화를 두고 우리 대학을 소위 ‘종북주의 대학’으로 몰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뉴데일리안>은 민중항쟁도를 두고 ‘평양시내 한복판에나 걸려 있어야 할 내용의 벽화가 지금도 걸려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커뮤니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는 민중항쟁도를 가르키며 ‘역시 홍어대’, ‘여기가 북한이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우리 대학 학생 ㄱ 씨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벽화가 어째서 북한과 연관된다는 것이냐”며 속상해했다. 1989년에 총학 총무부장을 맡았던 민주통합당 조오섭 의원은 “우리 대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산실이다. 광주가 민주인권평화도시를 지향하는데 이 역시 5·18에서, 우리 대학에서 출발했다. 이런 우리 대학의 벽화를 두고 종북이미지를 말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역사적 의미를 폄훼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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