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석기, 철기시대를 거쳐 플라스틱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당신 눈에 보이는 물건들 중, 셋 중 두 개는 분명 플라스틱일 것이다. 한번 확인해 보시라. 우리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우리 삶은 플라스틱으로 둘러 쌓여져 있다. 저렴한 일상 생활용품에서 스마트폰 등 전자 정보기기, 자동차, 우주항공기 및 의료용품 등의 첨단소재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하에서 퍼 올린 시커먼 원유에서 이 환상적인 소재들을 만들어 내다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또한 이들이 우연히 발견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최초의 플라스틱이라는 셀룰로이드도 사실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1968년 뉴욕의 인쇄업자였던 하야트는 당구공으로 쓰이던 상아의 대용품을 만들기로 하였다. 당시 당구공 제조업자들이 내건 1만 달러의 현상금이 욕심나서였겠지만, 어쨌든 천연의 질산섬유소로 실험하던 중 손가락을 다쳐 약병을 찾다가 우연히 이 섬유소를 효과적으로 굳힐 수 있는 장뇌를 발견하여, 셀룰로이드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여성용 스타킹으로 유명한 나일론도 우연한 발견의 대표작이다. 실패라 생각했던 실험 결과물을 버리기 직전 장난삼아 해본 냉연신 방법에 의해 아주 우수한 성질의 섬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1938년 10월 27일 뉴욕 헤럴드 트리뷴회관에서 듀퐁사의 기술담당 부사장이 나일론 개발을 성공했다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때 나온 광고가 “강철보다 강하고, 거미줄보다 가늘며, 석탄과 공기와 물로부터 만들어진 우수한 탄성과 광택을 갖는 단백질과 유사한 섬유”라는 명 카피였다. 나일론을 개발한 캐로더스는 발표 한해전인 1937년 42살이 되던 자신의 생일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허무한 실이라는 의미로 nihil과 rayon을 합하여 nylon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고도 한다.

이 같은 창조적 행위의 본질에 우연을 결부시킨 사상은 전통적 사고의 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17세기 베이컨식의 근대과학관은 새로운 지식은 우연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고 있다. 영어의 우연에 해당하는 chance는 그 어원을 보면 “떨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대에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천재들의 번뜩이는 영감도 우연히 떠오른 생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듯하다. 자연스럽게 고대에는 원인이 불확실하고 불가사의한 현상, 우연성에는 반드시 신의 개입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많은 예에서 창조의 근원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창조성에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 있다. 피타고라스도 그의 유명한 정리를 발견한 후, 신을 찬미하며 소 백마리를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발견들이 단순한 우연의 결과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천재들의 세렌디피티의 산물로 보는게 타당하다. 세레디피티(serendipity)란 영국작가 월폴이 처음 사용한 말로 사전에는 “우연히 운좋게 예상 밖의 발견을 하는 재능”이라고 나와 있으며, 우연을 활용하는 귀중한 능력 일체를 표현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과학철학자 이야마 히로유키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하는 방법으로서의 “우연”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분명 우연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뜻밖’이라는 것보다 ‘창조’부분이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창의적 성과물들은 무심히 보지 않고 경탄해 하며, 몰입하여 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매일 만나게 되는 우연들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결코 신이 우리에게 우연히 내려주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경험조차도 무심하지 않게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통찰력과 몰입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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