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쟁’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학과를 위해 열정과 시간을 쪼개어 뛰어다니는 학생회장 여러분, 참 고생 많습니다. 요즘 ‘신입생들에게 얼차려 주는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는데, 그 논란 가운데에 본인들이 서있다는 사실에 다소 억울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각종 신문에서는 학과 선배들이 관습대로 얼차려를 준다고 적어 놓았더군요. 그러나 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내려왔던 관습이라 해도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데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이미 없애버렸겠지요.

고백하자면 제 경험상, 얼차려는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데에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후배였을 때, 동기들과 힘든 얼차려를 받고 나면 어떤 연대감이 일어났습니다. ‘힘든 고통을 함께 견뎌내고 하나가 되었다’라는 일체감 말이죠. 특히 얼차려 마지막에 선배들이 던지는 따뜻하고 멋진 말 한마디는, 봄볕에 사르르 눈 녹 듯, 어떤 ‘감흥’에 휩싸이도록 만들지요. 적어도 제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선배가 되었을 때, 저는 개념 없는 후배들에게 똑같이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몇 명이라도) 말을 듣지 않던 후배들이 금세 학과 생활에 순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 또한 저와 비슷한 감흥을 겪었겠지요.

여러분들 또한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효과 때문에 계속 진행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겉모습만 다를 뿐, 학교, 군대, 직장 등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이런 폭력들이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큰 도둑에게는 눈을 감으며 작은 도둑만 잡아들이는 경우’를 볼 때처럼, 주위에서 이렇게 호들갑 떠는 것이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도 하겠군요.

그러나 아무리 겉포장을 하더라도, 외적인 강압 앞에서 생각 없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단지 ‘노예근성’일 뿐입니다. 후배들은 입시 교육의 폭력 아래에서 순종적으로 길들어져 왔던 지친 영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그리고 선배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똑같은 폭력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라는 명분 아래 말이죠. 기술적으로 ‘처음에 꽉 잡았다가 나중에 풀어줌으로써’ 기만적인 감동을 심어주어, 조직 논리에 순응하는 노예로 만듭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이처럼 한 인간을 노예로 취급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학과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노예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건강한 공동체의 핵심은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활동인데, 노예는 그 어떤 경우에도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형성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매년 학과 행사에 학생들의 참석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단지 취업전쟁 탓만 하는 것은 너무나도 게으른 진단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학과 공동체를 잘 이끌어가고 싶다면, 구성원 모두를 ‘주인으로 모시기’를 제안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행사에 ‘주체’로 나서도록 독려하고, 학과의 중요한 문제에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십시오. 상상력을 발휘하면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끈질기게 노력하십시오. 학생회장으로서 모두가 주인인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힘을 쏟는 일은, 자신과 공동체에 속한 모두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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