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복지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완전고용과 성장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하고, 불안정노동자층이 증가함에 따라 복지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늘었다. 복지담론의 홍수 속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복지의 기본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제도는 가난한 이들의 최후 보루이다. 과거 수급당사자들은 ‘생활보호대상자’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수급권자’로 호명되며, 법은 국가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그리고 국민은 사회적 권리로서 그것을 누릴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따라 누구든 연령, 성별, 노동 유무에 관계없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를 아주 낮게 책정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두고, 수급조건으로 자활노동을 강요하는 등의 제약이 존재한다. 따라서 법, 제도적 정비를 통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진입장벽을 낮추고, 수급권자의 권리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기초적인 복지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자산조사나 근로부과 없이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매월 국가가 기초생활의 적정한 금액을 현금으로 개인에게 지급한다고 생각해보자. 자산조사에 수반되는 치욕과 실업의 공포, 빈곤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일자리가 늘고, 창조적인 자기 활동시간이 증대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소득,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사고와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선별적이고 잔여적인 노동연계복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제도화되기까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수많은 과제가 뒤따르겠지만, 노동을 하든, 안하든 간에 삶을 살아가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사회적 임금으로서 사고할 수 있다. 또한 증세, 조세제도 개혁, 행정비용절감 등이 결부된 기본소득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델로 제시될 수 있다. 핵심은 기본소득보장이 노동을 해야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근대자본주의의 신념과의 단절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실업자가 ‘노동’(화폐로 매개되고 교환되는 자본주의적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양한 활동과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대안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로 논의 될 수 있을 것이다. 실현가능성, 재원마련, 조세제도 혁신 등 많은 과제가 남아있고, 여러 비판이 존재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브라질, 나미비아,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실험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기본소득도 논의해 보자. 필요하고, 정당하고,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넓혀지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