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깊은 연관 있다는 것 알아야” 

▲ 삽화=윤석문(미술학·06)

2009년 청주대는 ‘지방 대학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철학과를 폐지했다. 지난 3월, 원광대 역시 같은 이유로 철학과를 폐지했다. 지난해 동국대는 ‘미래지향적’ 학문구조를 위한다며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통합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인문학의 위태로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관심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박이문 교수(연세대·철학)는 저서 <통합의 인문학>에서 ‘인문적 교양의 질적 저하와 부재’라고 진단했다. ‘만물의 척도는 물질’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문화된 ‘기술’ 습득이 중요해지면서 인문학을 등한시하게 돼 인문학적 교양이 얕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문학 천대하는 사회…"일문과면 일본어만"

우리 대학 인문대의 경우 비교적 우수한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지만 다른 대학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문대에 재학 중인 ㄱ 씨는 “인문대의 가치를 취업률로 판단하는 일이 우리 대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구조개혁중점추진대학이 된다면 가장 구조개혁 하기 쉬운 곳이 인문대일 것”이라며 “입학정원이나 교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우리 학과가 조금씩 사라질까 무섭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인문학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는 취업에까지 이어진다. 사회가 기술을 요구하다 보니 기업에서도 인문대 학생들 보다는 경영대 학생을, 자연대 학생들보다는 공과대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양신정 씨(철학·10)는 “철학을 배우는 동안 즐거웠고 지금도 배우는 것이 재밌지만 취업할 생각을 하면 갑갑하다”고 걱정했다. 기병수 씨(영어영문학·06) 역시 “영문학을 전공하면 소설가나 대학원 진학이 아닌 이상 취업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 역시 인문학을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DEET(치의학교육입문검사)를 준비하는 이상록 씨(자율전공학·10)는 “솔직히 인문학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인문학은 개인과 사회를 볼 줄 아는 사유를 키워준다고 하지만 DEET 시험과는 상관없기 때문에 인문학을 꼭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핵심교양으로 서양문화사와 문화인류학개론을 듣기는 했지만 핵심교양이 아니었다면 수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계열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한 ㄴ 씨는 “일본어만 배울 줄 알았는데 일본의 역사와 더불어 동아시아 역사까지 배우는 중”이라며 “일문과면 일본어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술에 앞서 인간 이해 선행돼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는 인문학 학습 모임인 ‘함께 읽는 인문학 모임’, ‘영미 아동문학 세미나’가 학생과 교수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또한 지난 3월부터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 PHILLIAN(필리안)’을 시작했다.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인문학의 큰 의의를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위해 경영학을 배우고 물건을 만들기 위해 화학식을 배우는 것처럼 다른 학문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문학은 문학 작품이나 역사, 철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정신적 양식을 배우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인문대의 한 교수는 “인문학은 예외를 허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의했다. 문학 작품 속에는 눈물 흘리는 사형수나 바보를 사랑하는 소녀 등 현실 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우리는 작품 안에서 현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예외를 만나며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관용을 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문학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병수 씨는 “인문학을 다른 학문과 연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뛰어난 화가일지라도 밑그림이 없으면 좋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처럼 기술이 뛰어날지라도 밑그림이 되는 인문학이 없다면 기술을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며 “인문학만이 홀로 설 수 없는 사회에서 인문학을 다른 학문과 연관시킨다면 더 다양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강서 교수(철학·고대철학) 역시 “사회 구성원들이 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연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전했다. “기술을 통해 인간을 이롭게 만들고 싶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돼야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며 “이를 알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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