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유의 재능 있어…공정 방송위해 싸우겠다”

“나만의 ‘길’을 가야한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멀리하라”는 최일구 MBC 보도제작부 부국장(앵커)은 현재 파업 중이다. 그는 “참된 언론을 지키기 위해서는 파업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파업농성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집에서 푹 쉬고 있다”는 ‘파업으로 한가한’ 최 앵커를 만나 개교 60주년을 맞는 우리 대학 이야기를 나눠봤다. /엮은이 

“대학생이여, 큰 꿈 가져라”
‘7080’ 세대의 대학생활은 ‘낭만’으로 가득했다고들 말한다. 최 앵커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79학번이다. 그는 “삭막한 지금의 현실보다는 그때가 훨씬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고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대학시절 그는 ‘고팅(고고장 미팅)’ 주선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랬던 그가 고팅 주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

“‘10·26사태’가 터진 다음날 밤, 고팅 주선을 위해 고고장 표를 미리 사놨는데 곳곳에서 장송국이 흘러나와 고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손해를 이만저만 본 것이 아니다. 나는 10·26사태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웃음)”

어려서부터 신문을 많이 보던 최 앵커는 대학에 와서도 언론인의 꿈을 놓지 않았다. 권력기관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대학생활을 보냈다. 두근대는 꿈을 품은 대학생이면서도 막걸리를 즐겨 마시던 ‘애주가’였다. “돈만 생기면 친구들과 막거리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흐뭇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막걸리와 데모로 1~2학년을 보낸 최 앵커는 3~4학년 때 본격적으로 언론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사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될 때까지. 계속되는 도전에 조금 지쳐가던 찰나에 운 좋게 1985년, MBC 기자가 됐다.”

최 앵커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쉽게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도전하라”고 말했다.

“꿈이 없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꿈을 찾아라.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리고 꿈을 크게 가져라. 꿈의 크기만큼 자랄 수 있다.”

언론인 최일구 이야기
최 앵커 겉옷 주머니에는 항상 전자수첩이 들어있다. 모르는 단어나 한자, 맞춤법 등을 그때그때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최 앵커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본인이 하는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 앵커는 “어려서부터 ‘튀는 성격’에 뭐든지 열심히 하는 소년”이었단다. 그래서일까? 최 앵커는 보수적 구조를 지닌 뉴스형태를 변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면서 앵커멘트를 새롭게 시도해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다.

“앵커를 1~2달 해보니 왜 매번 뉴스데스크 앵커는 ‘‘~했습니다’로만 말할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사회의 ‘희노애락’을 담은 뉴스가 시청자와 더 소통하기 위해서 ‘구어체로 대화하듯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하느냐,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가 개인뉴스로 전락된 것 아니냐”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 앵커는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보다 시청자를 공감시키고 시청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지난 3일, MBC가 “김재철 퇴진”을 외치며 파업에 돌입한 지 100일째를 맞았다. 방송사 사상 최장기파업이다. 최 앵커는 현재 MBC 노조는 “분열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심정적으로 더 강고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 했다.

최 앵커는 “언론 본연의 감시와 비판 기능이 상실하자 자연스레 시청자는 MBC 뉴스데스크를 외면했다”며 “공정방송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고 밝혔다. 최 앵커는 현재 MBC 측으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상태다. 그는 “정직하게 살아보려다 정직 3개월을 받았다(웃음)”며 “파업이 끝나도 3개월 쉬다가 돌아가야 할 상황이라 언제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을지 요원한 상태”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학은 ‘상아탑’+사회참여 ‘선두주자’
흔히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표현한다. 상아탑은 속세에서 벗어나 진리를 탐구하는 학구적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최 앵커도 대학은 “학문연구에 전념하고 진리탐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대학생은 현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세대”라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대학이 사회참여에 선도적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전남대는 민주주의를 이끌기 위해 희생도 감내한 역사를 갖고 있다. 광주에서 5·18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나도 서울에서 함께 데모했다. 그때부터 전남대에 찾아가고 싶었다. 독재에 맞서 아픈 시대를 살았던 전남대의 피와 목숨이 현재의 민주주의를 살게 해줬다.”

“‘기죽지’ 말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전남대를 떠올렸다. ‘민주화의 성지’ 전남대의 개교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개교 60주년을 맞는 우리 대학에게 최 앵커는 “사회적 의제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길 바란다”며 “화염병 던지는 시국에서 정치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면 이제는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전남대가 사회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앵커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일치감치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 우리가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자기 안의 가치는 무한하다. 내가 누구인지 연구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라. 후회 없이 도전할 때만이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다. ‘돈’ 없고 ‘빽’ 없으니 우리 노력하자! 자기를 부정하지 말자. 기죽지 말고 당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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