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산기가 있어 아내와 병원에서 밤새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아내가 문을 황급히 열고 기쁨이 가득한 음성으로 “아들이에요.” 하는 말에 “응 그래?”하고 벌떡 일어나 벅찬 기쁨과 설레는 마음으로 분만실 쪽으로 급하게 갔다. 정말 하느님께서, 조상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일까.

간호사가 갓 태어난 손자를 안고 나와 보여주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첫 대면이었다. ‘아 요놈이 내 손자이구나’ 마음속으로 확인하며 신생아실로 가기까지 짧은 시간을 손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았다. 가끔 신생아실에 있는 손자를 면회하여 보고 회복실에 있을 때는 “녀석 고추가 참 잘 생겼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모두 참 예쁘다고들 하데요.”라고 해서 한바탕 웃기도 했다. 퇴원하여 삼칠일간 머물다 제 집으로 갔다가 두 달간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손자는 다시 내 집으로 와 함께 생활했다.

우유 먹이는 일, 기저귀 갈아주는 일 등 우리 내외는 온 정성을 다하여 손자 보는 데만 매달렸다. 손자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행복했다. 자라면서 정확하지 않게 앳디고 여리게 말하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예부터 “자식 키울 때는 귀한 줄 모르고 키우지만 손자는 자식보다 더 귀하고 정이 간다”고 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러나 옛말에 “밭을 매고말지 애는 못 본다”는 말처럼 예상치 못하게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제 부모와 상의하였더니 외할머니가 손자를 키워주시려고 살던 집을 팔고 아예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같은 동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었다. 딸의 처지를 생각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셨을 것이다. 그 후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자라는 동안 둘째 손자가 태어나 2대독자로 내려오던 집안에 독자를 면하는 소원을 풀어주었다. 부모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 텐데... 손자를 안겨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아들 며느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효자다. 장손은 집안 대를 이을 자손이어서 중요하지만, 둘째는 독자를 면해주어 또 중요하다. 형은 동생이 있어 외롭지 않고 동생은 형이 있어 든든할 것이다.

며느리는 셋째만은 딸을 원하였으나 또 아들을 보았다. 서운한 모양이었으나 나는 5대만에 3형제의 보배로운 손자를 보아 집안에 경사가 났다. 막둥이 손자 또한 사내답고 활동적이며 애교 많은 귀여운 짓을 하여 사랑스럽다. 손자들을 보면서 아이는 엄마 품에서 키워야 제대로 자랄 수 있고 인간은 더디게 성장하지만 참으로 존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도 외할머니께서는 손자에 대한 애정과 헌신적 사랑을 나보다 더하고 계신다. 그 엄마 입자에서도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떨어지기 싫어 울어대는 자식을 뒤에 두고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인들 편했을까? 며느리도 어머니에게서 받은 은혜를 자식들에게 품 갚아 되돌려 준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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