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학교폭력과 관련된 사례들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록 그 양태는 다를지언정 학교 안에서의 폭력은 항상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던 한 학생의 자살(12월 20일)이 보도되면서 학교폭력은 갑자기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발맞추어 교육계는 물론이고 다양한 영역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여러 가지 대응책이 논의되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스스로 다양한 참회를 쏟아내고 있으며, 수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형태의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또 정부 당국이나 교육현장에서도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으며,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다. 최초 사건이 일어났던 대구지역은 대표적인 곳이다. 그곳에서는 화요토론마당이라는 이름 아래 종교계인사들과 교사, 학부모, 학생들의 토론회가 매주 열리고 있다고 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백했고, 해당 교육감은 눈물을 흘리면서 책임을 통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안을 만들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최소한 일부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학창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약자를 괴롭히는 폭력만이라도 학교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필자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다. 필자는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서 20여 년 전, 전교조 출범 무렵에 있었던 한 방송국의 시사토론회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전교조에 반대하는 한 교장선생님이 전교조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식도 명문대에 보내고 싶지 않나”라고 했었다. 다소 점잖지 못한 표현이지만, 그 말 자체가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들을 보면서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비슷한 환경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슈가 된 학교폭력이 발생한 다음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 현장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다양한 행위들 속에서도 폭력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의 보도 태도이다. 14살 가해 중학생의 구속 장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실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수집하여 전파하는 보도태도는, 그 자체가 폭력이다. 강력한 처벌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는 학교폭력을 주로 개인적인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도덕적인 담론을 제외한다면, 실제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나오는 대책들은 주로 가해자 처벌과 신고 활성화 원칙만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도 없이 주로 예방효과를 가진 제도들을 통해 개인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학교폭력 자체가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즉 학교폭력은 개인적인 차원은 물론이고, 제도에서 사회적 인식 및 구조적 수준에 걸친 다양한 원인들이 상호 중층적으로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수준에서 학교폭력을 규제하는 법률이나 제도는 이미 우리 사회에 넘치도록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학교시스템이나 사회적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담론 수준에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주장들이 의미 있는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세계 1위로 1년에 200여명의 청소년들이 세상을 떠나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자. 학교폭력에 대응하여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개인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학교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며, 사회적 태도를 바꾸려는 실천적인 운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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