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신문 남성숙 주필이 ‘유리벽을 깨뜨릴 청춘들에게’ 전하는 현실적인 조언


‘유리벽’이 있다. 장애물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길이 막혀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돌아가라는 팻말도 없어 그 자리에 정체되고 만다. 여기부터가 바로 ‘여성진입금지구역’이다.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율이 높아지고 권익이 신장됐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하지만 여성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한계는 여전히 많다.

지역 언론계 최초의 ‘여성’ 주필이 된 <광주매일신문>의 남성숙 주필은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라며 옛날을 회고한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언론계에서 30년 동안 버티기란 보통 일은 아니었으리라.

<무등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광주매일신문> 문화부장·논설주간과 <광주매일신문> 발행 <해피데이>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광주·전남 지역 여기자 중 ‘왕언니’인 남 주필. 지난 1일 <광주매일신문> 사옥에서 만난 그는 우리 사회의 유리벽을 향해 지금도 돌을 던지고 있었다.

-왜 기자가 됐나?
“전남대 사회학과를 진학해 원래는 법조인을 꿈꿨다. 그런데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다보니 날마다 최루탄을 마시고 데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 아래 언론사 통폐합이 이뤄져 중앙에는 KBS, MBC, 조중동밖에 없었고 지역 신문사는 ‘1도 1사’ 제도에 따라 전국 8도에 총 8개뿐이었다. 보니까 기사가 전부 ‘눈가리고 아웅’ 식이어서 암흑세계 같았다. 찌라시가 유일한 언론이었다. 이때 민주화 운동보다 중요한 것이 ‘언론’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여기자로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일보다 ‘차별’ 때문에 힘들었다. 차별 정도가 아니라 일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일했다고 보면 된다. 주요 출입처는 대부분 남자 기자에게 배정됐다. 성희롱 문제도 심각했다. 예전에 원고지에 손으로 기사 쓸 때는 아이를 업은 채 무릎 꿇고 쓰기도 했다.

지난 30여년 내 삶을 돌아보니 가히 ‘살인적’이었던 것 같다. 능력으로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2~3배는 더 뛰었다. 개인적인 성공은 물론 여성운동에 힘쓰기도 했다. 그 결과 남녀평등고용법, 성폭력특별법 등이 제정됐다. 남자들은 일만 하면 됐지만 여자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남편에게 설거지조차 부탁할 수 없는 풍토였기 때문에 가사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여성 리더로서 어떤 태도로 조직원을 대하나?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권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여성청소년정책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정책관실 문을 터놓고 지냈다. 결재도 직접 가서 했다. 때문에 일의 효율은 훨씬 높았다.”

-그렇게 스스럼없이 지내다보면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생기진 않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는 권위가 없을지라도 일이 얽힌 관계에서는 잘못하면 따끔하게 질책해야 한다. 흔히들 ‘마더 리더십(mother leadership)’을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조직원을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자칫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엄마가 자식을 무조건 ‘오냐오냐’하며 키우면 자식은 망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 수준이라 생각하나?
“남자들은 요새 공무원, 교사, 법조계 등에 포진해 있는 여성들을 보며 ‘여성지배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7~9급 공무원, 여성 교사, 여성 검사는 많지만 고위직 공무원, 여성 교장, 여성 차장 검사는 매우 적다.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시험보고 들어가는 자리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진출율은 높지만 주요 결정권을 지니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여대생은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현재 광주·전남 지역 여대생 취업률이 전국 최하위에 머무른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 인프라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 기성세대가 노력해야할 부분이 많지만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능력을 더 개발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연봉보다 비전을 보고 취업 준비했으면 좋겠다.”

-지역 언론, 지방대는 ‘서울’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똑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회적 권력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동등하게 공개되는 현실에서 지방에 살기 때문에 기회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변명일 수 있다. 서울에 대해 스스로 만든 환상을 지워라.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나. 지방대가 아니라 ‘국립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지역 사회 내에서 최고가 되라.”

남 주필은 지금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기사 하단에는 ‘글·사진=남성숙 주필·이사’라고 실린다. <광주매일신문>에는 기사 작성자가 ‘기자’뿐만 아니라 ‘주필’이 있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나는 이 일이 천직인 것 같다. 내 글을 실을 수 있는 매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이가 60이 되든, 70이 되든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는 <여성과 참여> 정기 포럼을 위해 김대중컨벤션센터으로 향했다. 지역 변화를 꾀하기 위해 여성의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의 포럼인 듯 했다. 유리벽을 향해 또 한 번 돌을 던지는 모습이었다.

그저 불평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 능력을 키우고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행동은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처럼 한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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