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행복하기를 원한다. 왜 그런가? 답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의 본성은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라고 대답한다면 그 타당성과 궁극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행복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목표이며 다른 모든 목적들이 지향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달성이다. 행복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학문을 육성하고, 법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한다.” 라고 말했다

또한 플라톤을 비롯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공동체나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처방을 들려주었다. 어떤 종교나 철학도 이승에서나 저승에서의 행복이라는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행복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우리에게 물질적인풍요를 안겨주었으나 동시에 무언가 충족되지 못한 공허함도 주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물질을 추구하였고 우리에게 ‘딱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한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행복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광고들에 매우 익숙해져 갔다. 어떤 광고들은 열등감, 불안, 지루함, 외로움, 그리고 빈약한 외모에 대한 걱정 같은 우리의 약점을 겨냥하였고, 또 어떤 광고들은 그 물건의 구입이 우리에게 행복, 명예, 행운, 모험심, 성, 로맨스, 그리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 속에서 우리는 상품을 사고, 명예와 부를 누리는 물질주의적 삶이 개인적 행복의 길이라는 생각도 함께 구매하게 되었다. 이는 보다 깊은 삶의 만족, 지속적인 삶의 의미, 그리고 사회적 연결을 해체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여 우울을 비롯한 수많은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어떤 행복증진 전략이 효과가 있으며, 왜, 어떻게 그런지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행복 개입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실험적인 개입을 통해서 얻은 결과는 우리의 행복을 실제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행복이 마음상태이며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자신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에 행복학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해피어의 저자인 탈-벤 샤하르는 행복혁명이 중요한 사회전반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행복혁명은 물질인식에서 행복인식으로의 인식의 변화이며 정신적이며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사한 맥락으로 필자는 행복혁명이란 우리가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의식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검열 받지 않은 사고와 감정의 끊임없는 흐름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며 현재에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종종 부지중에 과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표류하면서 자신이 존재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이들은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현재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불합리한 불안이나 공포를 경험하곤 한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매순간 주어지는 경험들을 보다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주의와 자각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이 진정한 행복혁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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