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소설가에서 5월의 작가까지…“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나누는 것 보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글을 읽고 쓴다. 지겹도록 글을 만나지만 드는 생각은 단 하나다. ‘어렵고 힘든 글, 이젠 그만 쓰고 싶다.’ 이런 기자는 “글 쓰는 것 외에는 잘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하는 이의 삶이 궁금하기만 하다. 소설 <사평역>과 <봄날>로 익숙한 임철우 동문(영어영문학·73)을 만나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소설을 통해 내 몫 해보자

소설가라면 당연히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을 거란 예상과 달리 임 동문은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다. 국내 문학을 넘어 외국 문학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시야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던 터라 ‘대학생 임철우’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문학을 좋아해 많은 책을 읽고 습작을 했고, 휴학도 하고 연극도 하는 평범한 생활을 했다.”

학생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억압된 시대에 학생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임 동문은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전혀 무관심하게 있지도 않는 그저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 제대 후 세상이 어지러워진 데에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소설을 통해 세상에 무언가 내 몫을 해보자”는 마음도 이때 생겨났다. 물론 처음에는 막연했다. 자신의 몫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사회의식은 5·18 민중항쟁(이하 5·18)을 겪으면서 점점 선명해져갔고 사회의 모든 일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러던 중 ‘운 좋게도’ 대학교 4학년 때 신춘문예에 단편 <개 도둑>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소설가로서의 임 동문은 <동행>, <직선과 독가스>, <붉은 방>, <그 섬에 가고싶다> 등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색채를 지닌 소설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러한 주제들이 그의 정신을 끊임없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것은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쓰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고독일 수도 있고 일상생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내게는 분단과 전쟁, 5·18의 체험이 컸다. 나아가 이러한 체험들을 단순히 과거로 여기지 않고 ‘연속선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소설에 옮겨 쓴 것이다.”

5·18과 소설 <봄날>

임 동문은 여느 남학생들처럼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했다. 소설가 황석영이 운영하던 마당극 운동 단체 ‘광대’에 끼어들었고 <한씨 연대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꾸준한 연습을 했다. 그러나 공연을 바로 앞두고 터진 5·18 때문에 극을 무대에 올릴 수 없었다. 연극 공연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임 동문은 열흘 동안의 5·18을 보내게 된다. 열흘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죽음의 현장을 도망쳐 나왔다는 죄책감에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 임 동문의 심정과 같지 않았다. 서강대 대학원을 다니며 만난 이들에게 5·18 이야기를 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를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광주만 생각해도 눈물짓던 임 동문으로서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절망감마저 들었다. 이에 그는 “무너지지 않고 5월의 일을 알려야 한다”는 강렬한 다짐을 한다.

그랬기에 17년 만에 완성해낸 <봄날>은 집필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책이다. “쓰고 나서 어느 정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만큼 완성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너무 컸던 것이다.

생계의 고통보단 글 쓰는 즐거움

현재 임 동문은 ‘다행히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겸하고 있어 생계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그 역시 ‘소설가는 가난하다’는 명제를 피할 수 없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작가로서의 일만 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인기 있는 작가도, 많은 원고료를 받은 것도 아니었기에 생활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사는데, 나에겐 그것이 글쓰기였다. 물론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그보다 글 쓰는 즐거움이 더 컸다.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소설을 통해 그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교수직을 그만두게 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글쓰기에 매진할 것이다. 사실 글쓰는 재주 말고는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하다”며 웃음 짓었다.

많은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 가져라

글 쓰는 일을 즐거워하는 그에게도 글 쓰는 일은 늘 어렵다. 좋은 글쓰기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애정을 키워야 한다. 이런 애정을 느끼기 위해선 남보다 훨씬 많이 읽고 생각하며 넓은 시야를 갖고 더 예민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옆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학생들은 인내와 노력을 하기 보다는 그저 글을 ‘빨리 완성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임 동문은 “글쓰기를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며 “글 쓰는 것이 어렵고 힘든 과정임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내하고 버티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낼 수 있고 그런 사람만이 깊은 경지에 도달 가능하다. 그래서 글쓰기가 더 어렵다”며 많은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란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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