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26재보궐 선거는 여러 모로 괄목할 만한 과정과 결과를 동반했다.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져 있지 않던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소위 ‘안철수 바람’을 등에 업고 혜성같이 등장해서는 제1 야당의 후보를 누르고 야권 통합 후보가 되더니 급기야 여당 후보까지 압도하면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 원인과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추측과 논의가 분분한데 분명한 것은,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기존 체제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으며 무언가 커다란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전 세계적인 대세인 것 같다. 알제리에서 생필품의 급격한 인상으로 촉발된 민중 시위가 부패한 독재권력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적 민중혁명으로 확산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게 엊그제 일 같다. 자스민 혁명으로 불린 이 민중의 거대한 움직임은 이후 비슷한 문제들을 지닌 이웃 아랍국가들로 전파된다. 곧이어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맥없이 무너졌으며 철옹성 같던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도 거센 저항 끝에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자스민혁명’의 물결은 45%에 달하는 청년실업률로 신음하는 스페인에도 밀어닥쳤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거하여 텐트를 치고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회적 변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분노한 세대’가 여야정치인들을 부패하고 기생적인 집단이라 성토하면서 일자리 마련과 주거조건 개선, 투명한 정부를 소리 높여 외치자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지난 3월에 포르투갈에서 시작했으며 프랑스를 거쳐 아테네에 이르기까지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젊은이들 사이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움직임은 미국 동부해안에 상륙해 월가 점령 운동을 낳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 세계적 운동의 공통분모로 거론되는 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적 매체를 이용한 새로운 소통과 조직화의 경향이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이는 새로운 바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해적당’의 출현이다. 이 명칭은 불법 음반 등을 ‘해적판’이라 부르는 데서 따온 것이다. 해적당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06년 스웨덴에서인데 현재는 전 세계 52개국에 해적당이 결성돼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지난 9월 실시된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해적당이 8.9%를 득표해 15명의 시의원을 배출할 정도로 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해적당은 애초 인터넷 검열과 과도한 저작권 적용을 반대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풀뿌리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지향하는 등 새로운 정치문화를 실험하고 있으며 모두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할 ‘기본소득’, 무료 대중교통 이용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우리에게도 ‘해적’은 이미 낯선 현상이 아니다. 최근 정치권을 초긴장시키고 있는 ‘나꼼수’는 ‘골방 해적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기존 지배 및 권력구조, 언론, 시장체제에 대항해 젊은 세대가 벌이고 있는 때론 경쾌한, 때론 치명적으로 날카로운 저항의 새로운 바람들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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