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생.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먹고 살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때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망’가려 한다. 전대신문은 ‘포도청’을 통해 총 4차례 다른 주제로, 포기하고 도망가려는 청춘들(포도청)과 공감하려 한다.

소셜테이너 권해효 씨가 ‘세상에 짓눌린 청춘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청춘은 힘들다. 동시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도 어려운데 사회는 청춘더러 열댓마리의 토끼를 잡아오라고 한다. 그러고서 “힘들어도 해내는 사람이 있잖아. 왜 너는 못해?”라는 비난을 가한다. ‘20대 80’ 아니, 이제는 ‘1대 99’가 되어버린 사회 구조에서 수많은 ‘나’들은 저마다 ‘1’을 향해 달려가지만 ‘99’에 속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안다.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고 불리는 배우 권해효 씨는 “이 일렬로 줄 세우는 사회를 삐뚤어보라”고 역설한다. 이 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1’을 향해 달려가면서 힘들다고 투정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잘못됐다고 불만을 ‘함께’ 외치라는 것이다.

호주제 철폐 운동,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 반값등록금 1인 시위,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본부’ 홍보대사 등 10여 년간 소셜테이너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냈던 권 씨가 최근에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재일본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을 결성했다. 몽당연필 콘서트를 위해 지난 8일 우리 대학을 찾은 그를 전대신문의 두 기자가 만났다.


-군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절대 복종’ 마인드가 몸에 배었을텐데도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소셜테이너’가 됐다. 사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시민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지녔을 뿐이다. 거창하게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이타적인 자세를 배우면서 나도 함께 성장한다.”

-소셜테이너로 활동하면서 외압을 받은 적이 있나?

“북한 어린이들에게 영양빵을 보내는 사업은 정부의 강력한 탄압 속에 중단됐다. 같은 민족에게 보내는 온정에도 정치적 잣대를 들이댔다. 지금 대한민국 통일부에는 통일이 없고 여성부에는 여성이 없고 교육부에는 교육이 없다. 철학이 없다.”

-현재 대학생의 사회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나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학생 자체가 특권층이었다. 특권층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고 강력한 상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었다. 요새 대학생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힘들다. 때문에 우리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불만을 표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생각한대로 행동을 할 수 없게 하는 이 사회가 문제다. 경쟁만 체화시키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세태를 기성세대가 해결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대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학내와 사회의 정치에 참여하길 바라나?

“투표는 꼭 하라. 투표는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정치 참여인데 안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으면 좋겠다. 지역이나 인물보다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20대가 가장 자유롭지 않나.”

-우리 대학은 지방에 위치해 있어 문화, 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남대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대한민국은 어쩔 수 없는 ‘서울공화국’이다. 하지만 전남대에는 쉽게 바래지 않는 5·18민중항쟁의 정신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전통을 계승해 ‘일렬로 줄 세우는 사회’를 삐뚤어보고 다른 차원의 접근을 해보자. 이때 정부는 국립대 법인화 따위를 추진하면서 초치지 말아야겠지.”


인터뷰를 마치고 권해효 씨는 몽당연필 콘서트의 사회를 보기 위해 대강당 무대로 향했다. 콘서트 중간중간 들려오는 그의 내레이션(narration)은 아동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들을 울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과 눈을 가지고 생각하지. 나는 너희들(재일동포 및 조선학교 학생들)을 통해서 역사를 본다. 지난 65년의 세월 동안 거기 있어줘서 고맙다…….” (콘서트 도중 권해효 씨가 재일본 동포들에게 전하는 편지에서.)

몽당연필. 많이 깎아 써서 길이가 짧아진 연필. 그 짧아진 길이만큼 지나 온 세월 또한 녹록지 않다. 그 모습이 마치 지난 60여 년간 우리의 무관심, 일본의 차별에 시달린 재일동포 그리고 조선학교와 닮았다.

하지만 몽당연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 짓눌렸던 과거사를 이겨내고 이젠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 수 천, 수 만 개의 몽당연필들이 모여 ‘희망’을 품고 새 연필이 되는 찬란한 과정, 그 과정에는 우리의 ‘공감’과 ‘연대’가 있다.

<다음호에는 '만사가 귀찮은 청춘들에게'가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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