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가을이다. 매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그 가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꽤 기대되고 설레는 가을일 것이다. 뭔가 하나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이토록 오랜 기다림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가을의 의미가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대학원의 2년 과정을 마친 요즘,'배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본다. 과연 내 자신은 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어떤 결실을 맺었으며,'학문'이라고 하는 이 깊은 세계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난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배움에는 때가 없고, 또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해야 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문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히'배운다'라는 의미를 넘어 '배워야 한다'는 의무와 어떤 뚜렷한 목표가 함께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배움에 대한 욕심은 있었으나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의 대학원 생활은 한마디로 제자리걸음이었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방황만 하다가 2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그렇게 훌쩍 흘려보내 버렸다. 만약 나에게 진정한 학문의 길로 인도해주는 나침반이 있었다면, 지금과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논어』첫 구절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기쁨을 알아가며 인문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세계에 조금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핵심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배제된 인문학을 어찌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에 대해 연구하고, 인간들이 인간다움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역할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인문학을 연구하는 주체만 있고, 그 근본적인 연구의 대상과 목적을 잊고 있진 않은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 또한 인문학 연구자들의 몫일 것이다. 만약 내가 배움을 넘어 다시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나침반을 찾게 된다면, 그 끝은 분명 사람을 향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근본이 무너진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나라의 근본이 되는 국민은 국가정책에서 배제되어 있고, 교육의 근본인 학생들은 학교에서 소외되어 있고, 노동의 근본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자본주의라고 하는 거물 앞에서 힘없고 나약한 인간들은 이렇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소외되어 죽어가고 있다. 인간이 근본이 되지 못하고, 돈이 인간보다 우선시 되는 이 사회를 어찌 인문학이 제대로 뿌리 내린 사회라 말할 수 있겠는가. 무너져 가는 인문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근본 없는 이 사회를 바로잡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아직 학문의 깊은 세계는 알지 못하지만,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면 그 속에 한번 깊이 빠져 볼만 하리라고 뒤늦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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