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멀리로만 향했던 눈길이 요즈음 들어 내 주변 가까이로 옮겨와 있음을 느낀다. 나이가 쌓이면서 철이 들어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함이 없이 지나쳐버린 시간들이 아쉬워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길의 변화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의 실마리들을 던져준다. 그것들은 따뜻하게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회한을 불러와 잠 못 들게 하는 밤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속의 작은 움직임과 발견들은 전에 없었던 나만의 안식이자 기쁨이다.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과 산에 올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였다. 배낭에 담아온 것들을 꺼내놓으며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왠가 했더니 서로의 시선들이 하나뿐인 자그만 김치 그릇에 멎어 있었다. 한두 살 박이 어린아이 주먹만한 그릇에 담긴 김치를 보고 모두가 어이없어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산행 초엽에서 김치 이야기가 있었다. 매번 김치를 담당했던 일원이 이번에는 깜박하였던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음식점으로 내려가 김치를 사오기라도 하겠다고 나섰다. 그때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가 김치를 가져왔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되느냐고 하니까 아마도 우리가 먹을 수는 있는 분량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치에 대해서는 안심을 하고 정상을 향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것이었다.

일행들은 껄껄거리면서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데 큰일 났다는 둥, 자기가 먹는 김치 양만 생각하면 되겠냐는 둥 한참 법석이었다. 친한 사이들이니 무슨 타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김치를 준비해 왔다고 말한 사람은 무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아니, 가져오고도 말을 들어야 하나? 적으면 적은대로 먹지······”하는 말로 추스르자 모두들 웃음으로 접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보통사람들의 불평불만을 줄이는 데는 입 구완이 최고라 했던가? 점심을 우겨 넣느라고 더 이상 김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점심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참 별일이다 싶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구동성으로 너무 적다고 투덜댔던 김치가 남아버렸다. 그것도 젓가락질을 두 번 해도 될 양이었다. 일행들은 하나같이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는 표정들이었다.

“내 뭐랬어? 누구야, 아까 투정한 사람이···?···” 김치 주인이 가슴을 쫙 펴면서 기세 좋게 한 마디 했다.
“많을수록 부족하고, 적을수록 남느니라.”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던 나이 수굿한 일행이 선문답 하듯 거들었다. 모두가 김치 문제는 완전히 털어버리고 기분 좋은 웃음으로 점심을 끝냈다.

나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어보았다. 그러자 어디 누구에게라도 할 것 없는 감사가 가슴 가득 차오름을 느꼈다. 아, 먼 곳으로만 내달렸던 시선을 거두니 거기에 진실이 있는 것을·····.
(2011년 9월 28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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