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에 시작한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결과가 갖는 위력은 대단하다. 상대평가를 동원하여 대학 간 상호비교와 서열화에 초점을 맞춘 평가 결과에 대학인들이 일희일비하기 때문이다. 마치 순위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프로 스포츠 게임을 보는 듯하다. 관중은 대학입학예정자와 학부모, 그리고 상위권 대학 출신자를 원하는 기업체이다. 감독 역할을 하는 대학지도부는 자신들의 능력이 ‘순위’로 평가받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평가 지표에서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는 ‘선수’ 확보에 집중한다. 그 대상은 연구 잘하고 연구비 많은 따는 교수, 외국인 교수 수, 외국인 학생 수, 취업률 등이다.

그 동안 진행된 대학평가 결과를 보면, 대체적으로 순위에 큰 변화가 없다. 20위권 내외에서 매년 도토리 키 재기 하듯 등락을 반복할 뿐이다. 중요한 특징은 상위권에 위치한 수도권 소재 대학들이 고액의 등록금을 받고, ‘교육’보다 교수진의 ‘연구’를 중시하여 강의 부담을 줄여주고, 대기업을 재단으로 두고 있거나, 수도권이 갖는 지역적 특성과 이점을 맘껏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불공정한 이 게임은 시장의 힘과 상업적 가치가 대학을 이끌어가는 형국을 대표한다.

평가의 특성상 ‘질’보다는 숫자로 변환 가능한 ‘양’을 중시하는 이 게임에서 자상하고 섬세한 절차를 중시하는 ‘교육의 과정’은 뒷전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교육’ 활동은 그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고 점수로 환산하기도 어렵다. 그 효과 또한 1년 만에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게임은 대학의 교육과정이 청년 인재들의 핵심역량으로 기대하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의사소통능력, 공동체 의식 등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핵심역량 배양에는 교수의 헌신적 강의, 교수-학생 간 상호작용 정도, 각 대학만의 고유한 문화 등이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가 결과 나타난 대학 서열과 교육 내용의 질적 수준 간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적실한지 의문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화와 서열화로 특징되는 평가 결과에 연연하여 일희일비하는 대학인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기만 하다. 다양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의 관심과 재능을 발굴하고, 그들의 지적 창의성을 높이며,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배양하는 참교육 실천의 과정 평가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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