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장소와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디자인의 정의를 고찰하여 삶의 터전을 만드는 디자인을 만나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광고에 나온 글귀이다. 흔히 디자인은 예술 작품의 하나로 치부된다. 이번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기존의 디자인의 의미를 넘어선 삶 속에 녹아있는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의 틀을 깨고 광주 도시 안에 자리 잡은 ‘광주폴리’에서 변화된 디자인의 답을 찾는다. /엮은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디자인의 정의를 고찰하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인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는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란 뜻이다. 이번 디자인비엔날레는 ‘디자인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4개의 갤러리들은 비엔날레시티라는 특별한 도시 안에서 각각의 주제를 담고 전시돼있다. 갤러리마다 하나의 도시로 구성되어 이 도시들이 결국 나중에는 서로 연계돼 하나의 사유하는 장소로 디자인의 변화와 의미를 체험한다. 1갤러리(클러스터 시티)는 정치·경제, 2갤러리(네트워크 시티)는 문화·허브, 3갤러리(랜드 스크립트 시티)는 과학·스포츠, 4갤러리(그리드 시티)는 건축·음식으로 그에 맞는 디자인들이 전시되어 있다.

4개의 갤러리들의 작품은 전문화된 디자인 영역의 경계를 넓히고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끼게 한다. 현재 쓰는 휴대폰의 디자인을 만드는데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따르거나 혹은 지금 살고 있는 주택 또는 도시프로젝트를 보며 디자인을 통해 현재 사회의 상황과 문제들을 직면하게 한다.

전시된 작품 중 ‘베일과 신체가리개’ 작품은 무슬림 나라들의 여성의복에 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슬림 나라의 여성의복인 부르카부터 시작해서 히잡까지 여러 종류의 옷이 나열돼 있다. 기자가 이 작품을 처음 보면서 든 생각은 ‘공포’였다. 인간의 기본적 삶을 유지함과 동시에 돋보이게 하는 옷이 한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 그러했다. 부르카는 무슬림 여성의 의복 중 가장 심한 제약을 받는 옷이다. 신체의 일부분조차 내놓지 못해 최근에 한 무슬림여성이 분신자살을 하는 등의 사례가 있을 정도다. 이렇듯 여성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베일과 신체가리개’ 작품은 그 옷이 사람들 혹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시사해주는 작품이다.

또한 ‘훔쳐보기 작품은 전형적인 한국의 아파트 구조를 재현해 공동체의 ‘어두운 면’을 탐구한다. 아파트라는 조형물 안에 기러기 아빠의 삶, 3D업종의 노동자의 삶 등을 아파트 창문 안에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작품들을 보며 ‘디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물음도 하며 도가도비상도라는 주제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디자인은 세상을 꾸미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뿐만 아니라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위조화폐'작품은 세계에서 가장많이 위조되는 미국달러를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보여준다. 위조화폐를 막기위해 어떤 디자인의 변화가 필요한지 제시한다.

마지막 갤러리까지 그 주제에 맞는 디자인들을 만나고 오면 벽면 한쪽에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디자인이 뭔데요?”라는 글귀가 있다. 이 글귀를 보며 디자인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기자가 느낀 디자인은 조형물을 넘어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디자인이기도 했고 혹은 도로 위를 꾸미는 조형물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디자인은 결국 우리 삶을 조명하는 하나의 모습이었다.

▲광주폴리 ‘광주를 하나의 문화적 유기체로’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특별 프로젝트인 광주폴리는 옛 광주읍성의 흔적을 따라 10개의 폴리(Folly)를 설치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구도심을 재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폴리의 사전적 의미는 별 의미 없이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는 뜻이지만 광주폴리는 그 하나하나에 광주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지역적 특성을 담아 공공시설이자 문화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이곳에서는 옛 광주읍성 터를 따라 설치된 10개의 폴리가 하나의 파빌리온 공간으로서 선을 이루며 동시에 네트워크적 공간을 형성해 지금은 공동화 현상이 뚜렷한 구도심에 강력한 힘을 부여하고 있다.

▲ 광주세무소 사거리에 설치된 김세진·정세훈 작품의 '열린장벽'. 이 작품은 현도시의 삶과 소통하는 옛 읍성벽을 의미한다.

앞으로 폴리는 광주 전역에 100개 가량이 더 설치될 예정이다. 그리하면 구도심은 문화적 심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폴리가 형성하는 선을 통해 광주 전역으로 힘찬 펌핑을 하여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유기체를 완성할 것을 유도한다.

하지만 광주폴리라는 문화적 공간을 향유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도 시민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야만 진정한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0개의 광주폴리는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의 초심을 잃지 않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man) 같은 내로라하는 세계적 거장들이 작가 자신의 만족과 외부의 의식을 신경 쓴 디자인을 포기한 채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적 유산, 사람들의 동선과 시선, 하다못해 주변의 나무 한 그루까지도 고려해 그 장소만의 속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단지 외형적 모습만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광주폴리는 고철조각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광주폴리가 제시하는 디자인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다. 디자인에는 우리 사회의 사고와 양식과 환경이 반영돼 있다. 또한 당시 사회의 행복, 아픔, 좌절 같은 감정이 담겨있다.

결국 디자인을 바라봄에 있어 시각적인 미(美)만을 추구하던 시민들에게 광주폴리는 총체적인 미학의 기회를 제공한다. ‘틀’을 깨뜨린 시각이 어디까지 작품의 본질, 나아가 진실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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