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시작한 영어, 한 평생 영어교육 위한 삶으로


“영어를 정복하려 하지 마라. 영어에 정복당하라.”
국제 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는 박남식 동문(영어영문학·59)은 이메일을 통해 학생들에게 영어로 된 속담을 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배우는 영어’라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는 영어를 강조하고, 이를 30여 년간 교육에 반영해 온 박 동문을 서울에 있는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났다.

▲ 영어에 인생을 걸다
“어린 시절, 가난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무기가 있었어야 했다. 전쟁 직후라 통역관들이 많았다. 어린 마음에 영어를 통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40년 화순에서 태어난 박 동문은 통역관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던 삼촌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영어에 뜻을 두고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고등학교 시절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박 동문은 단파라디오를 사서 영어방송을 수 십 번 읽고, 받아쓰며 독학했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대학 입학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영어를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다. 당시 영어를 배우기 위한 조건이 여의치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영어에 내 인생을 걸겠다고 각오했다. 특히 호남의 영어교육을 한국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 가는 데 일조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당시 전남대학교가 호남을 대표하는 신흥 명문으로 자리를 확고히 잡아 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학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나에게 전남대 영어영문학과는 안성맞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뒤 박 동문은 우리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4년 동안 고무신을 신고 다닐 정도로 형편이 여의치 않았지만 틈틈이 영어를 가르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대학생 시절의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목적의식이 뚜렷한 학생으로 추억했다. 박 동문은 “학교 과목의 성적보다는 나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전력투구했다”며 “학교성적은 초라한 편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 영어교육 위해 전공까지 바꿔
대학 졸업 후 미국 하와이대학교(University of Hawaii)에서 이론언어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박 동문은 196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지론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이론언어학이란 전공은 여의치가 않았다. 그는 교수 재직 중 과감히 미국 조지타운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로 가 응용언어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학자로서의 꿈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면 학술적인 이론을 효과적인 교육에 접목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몰입했었던 이론 언어학을 30대 초반에 뒤로하고 영어교육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응용언어학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자연스럽게 박 동문 자신도 가르치는 것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스스로도 학자로서 보다 교수로서 충실히 살려했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했다. 박 동문은 “항상 학생들이 가능한 한 많은, 실질적인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이론적으로 높은 수준을 추구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려 했다”고 밝혔다. 영문학에 관련된 학회를 뒤로 하고, 영어교육학회에서 활동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는 “학회의 대표자 역할을 할 때 다들 백정을 무시하지만 정작 맛있는 고기는 백정이 먹는다고 회원들에게 자주 말했었다”며 “당시 영어교육학회는 비주류였지만 나는 주류를 쫓기보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따라 학자로서의 양심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는 영어교육에 관련된 학회가 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백정이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될 것이란 그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이 되다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나의 영어교육자로서의 생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해 연장되었기에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5년 정년퇴임한 박 동문은 2006년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직에 오른다.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는 우수한 영어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둔 특수대학원으로 영어지도학과와 영어교재개발학과로 학과가 구성되어 있다. 학생 전원에게 모든 학기 전액 장학금이 지급돼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른 일반 대학의 영어교육학과보다 해외 명문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 중인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박 동문은 “영어를 잘하고, 잘 가르치는 교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의 목표는 원어민 교사와의 경쟁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 ‘사용하는 영어’ 강조
영어에 대한 박 동문의 지론은 ‘실용’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배워 실전에 써 먹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왔다.

“영어는 실생활을 통해 배워야 한다. ‘One for the Road’가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는 의미인 것을 누가 알겠는가? 나는 이 말을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어느 술집에서 듣고, 기억하고 있다.”

박 동문은 ‘사용하는 영어’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다. 거리의 간판, 제품의 설명서, 노랫말, 신문의 헤드라인 등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어를 조금씩이라도 익히고 이를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삼아야 진짜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매일 영어 속담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박 동문은 “속담은 축약이다. 그 하나하나에서 인류의 지혜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사용하는 영어’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전한 속담들을 모아 속담집을 내기도 했다.

박 동문은 영어를 잘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역시 ‘사용하는 영어’를 강조했다. 그는 “공인인증영어와 같이 책과 싸우는 영어는 위험하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두려워 말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어를 하라”며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추천하기도 했다. 또한 “준비하지 않는 자는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며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가장 오래 그리고 잘 웃는 것이니 지금 한 없이 괴로워도 끝까지 참고 노력하라”고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한 조언을 했다.

박남식 동문은 ▲1940 전라남도 화순 출생 ▲1963 우리 대학 영어영문학과 입학 ▲1969~1975 서울대 어학연구소 전임강사, 조교수 역임 ▲1975~2005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부교수, 교수 역임 ▲1988~1990 국제한국어교육학회 부회장 역임 ▲1990~1992 한국영어교육학회 학회장 역임 ▲2006년~現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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