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전에 수강생들에게 우리나라가 선진국, 선진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양극화 해소, 인권, 가족, 평화, 질서 등을 지적하는 리포트를 읽으면서 우리 학생들이 참 건강하고 상식에 기초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해 낙관을 하게 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은 어떤가.

어떤 심리학자(황상민의 한국인의 심리코드)는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는 ‘사회인식불능증’에 처해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즉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동 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나 각기 다른 특성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대세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그것을 좇아가기 바쁘다. 그렇다 보니 각자 다르게 직면하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공동의 문제해결능력은 거의 재앙수준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사회인식 불능증세의 증거로써 웬만큼 산다는 사람들도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실을 들면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자신의 삶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미래가 불안하다고 믿는다고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군대, 해병대원 사이에서 참으로 불행한 사고가 터졌다. 인생의 황금기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청년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면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제 오늘의 일인가. 그들 인생에서 얼마나 귀중한 한때이고, 또 그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런데도 군 상층부에서는 마치 하급장교와 사병의 문제인 것 같이 말한다.

나는 수업시간에 종종 돈 많이 벌어 잘살고 싶으면 고시나 공무원, 공사 등에 지원하지 말도록 권한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 돈많은 부모가 계시다면 모를까 - 월급으로 만 살아가려면, 남들처럼 집도 사고 애들 교육도 시키고 승진도 하려면 말 못할 애환이 없을 리 없다. 우리는 모두 잘 안다. 가난해도 청렴한 대다수의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신문의 사회면은 어두운 기사로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당 공무원만 처벌하면 아무 문제도 남지 않을까? (성공한)청탁과 부정을 통한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를 놓친 회한과 좌절을 안고 살거나, 그 중에는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이 빛도 못보고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생을 마감하는 민원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금년 7월에는 퇴직 전 1년 동안 근무했던 지역에서 1년간 사건수임을 금지하는 소위 ‘전관예우금지규정’이 변호사법개정을 통해 발효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면 생선가게 뿐 아니라 시장이 온통 도둑고양이들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운전을 하다 가끔 앙증스런 고사리 손을 들고 길을 건너는 유치원어린이들을 보면 맑은 햇살을 보는 것처럼 따뜻해진다. 그런데 왜 초등학생만 되어도 그네들은 그러지 않을까. 틀림없이 그 애들은 배운 대로 자기들끼리 손을 들고 횡단보도에 서 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정지해 주지 않는 무서운 자동차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 이미 한국의 어린이들은 나름대로 세상의 원리를 터득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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