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학과 다르게 전남대는 지금까지 왜 5월에 축제를 열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다른 곳이 아니라 전남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80년 5월의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 고통의 의미를 묻고, 기억하기 위해서 싸워야만 했다.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지고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광주에서의 5월은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최근 전남대에서는 1학기 중에 축제를 진행하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와는 달리 그 고통의 무게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일까? 어쩌면 한 세대가 지나고, 정치적인 환경 역시 변했으며 90년대에 역사청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의 사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5?18을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종결된 사건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 5?18은 완결된 사건인가?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으며,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문부식은 이 문제를 두고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는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1982년 부산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 받았고, 최후 진술에서 “만일 광주가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을 것이다”(22)라고 말했다. 두 차례에 걸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지금 그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돌이켜 보고 있다. 그의 저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은 5?18과 다른 여러 사건들의 기억의 문제를 다루면서 물음을 던진다. 군사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그 사건 당시에는 침묵하였고, 지금은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물음을 바탕으로 그는 우리가 스스로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부당한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을 보고서도 침묵하고, 심지어 그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 안의 부당한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심어져 있는 국가와 제국(미국)이라는 우상에 대해 맹목적이기만 했다. 그것을 결코 비판적인 성찰의 대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5?18이 완결된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종결된 것으로 취급한다.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이나 우상과 충돌을 일으키는 5?18을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역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5?18은 국가가 기념하는 ‘역사’는 되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고 있다.

31년 전의 사건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군사정권의 유산은 “여전히, 아니 더욱 넓게 그리고 깊숙이 우리 안에 남아 있다.”(38) 우리의 욕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그 욕망을 따르려면 타자의 고통과 부조리에 눈과 귀를 닫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폭력이 우리를 덮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우리는 권력의 자그마한 손짓에도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망각은 또 다른 학살의 시작”(25)이기 때문이다. 5?18의 기억의 문제는 우리가 광주에서 살고, 전남대를 다닌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더욱 크게 다가온다. 5?18을 주막에서 ‘기념’하기보다는, 문부식의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5?18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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